여행을 하다 보면 문제가 한두 건 일어나기 마련이다. 일행 중 누군가가 한눈팔다 늦기도 하고 길을 잃어 헤매는 바람에 찾아 나서기도 한다. 때로는 넘어지거나 다치는 사람도 나오고 뜻하지 않게 지병이나 급환으로 병원에 실려 가기도 한다. 그동안 여행길에 사소한 문제가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그 당시에는 어쩌지! 어쩌지! 하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돌이켜 보면 별 것 아닌 일이다.
심각한 문제는 여권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그런 일이 일어날까 봐 해외 여행지에선 늘 노심초사다. 여행자를 안내하는 가이드들도 이 문제만은 신신당부하는 사항이다. 그런 일이 하필이면 미국에서 캐나다로 들어가는 날 발생했다.
일행이 탄 56석의 버스는 여행자로 꽉 찼다. 서로 다른 여행사에서 온 팀이 2팀. 미국 각지에 사는 교포들이 3팀. 총 5팀이 한 버스에 타고 여행을 다니고 있었다. 캐나다로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서서 1시간여쯤 달렸을까.... 한 남자가 쭈뼛쭈뼛 가이드에게 다가온다. 여권을 떠나 온 호텔 로비에 놔두고 왔단다. 하얗게 질린 가이드와 그 남자! 이리저리 전화하고 부산을 떨어댔다. 결국, 그 남자를 캐나다와 미국 사이의 국경에 내려놓고 우린 캐나다로 떠났다.
나이아가라 폭포
국경을 지나니 가는 길이 온통 단풍 길이다. 눈 닿는데 마다 단풍이 막 절정을 지나고 있었다. 단풍이 절정일 때 풍경이 화려함이라면 절정을 막 지난 단풍에는 우수가 담겼다. 바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풍 풍경이다. 그 우수에 찬 단풍 풍경에 정신이 팔렸다. 차로 달리는 내내 창밖을 보며 행복했는데 어느덧 나이아가라 폭포에 도착했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미국과 캐나다에 걸쳐 있다. 원주민말로 나이아가라 폭포는 ‘천둥의 소리를 만들어 내는 물’이라는 뜻이다. 캐나다 쪽에 있는 폭포는 ‘말밥굽 폭포’라 하고 미국 쪽 폭포는 ‘브라이달 베일 폭포’라 한다. 양쪽에 다 있는 폭포지만 이곳을 구경하기 위해선 모두 캐나다로 간다. 미국 쪽에서는 이 폭포의 전경(全景)을 잘 볼 수 없는 지리적 환경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경관 중 하나로 각지에서 연간 12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리는데, 그 수입이 캐나다 몫이니 미국 측으로서는 배 아프겠다.
폭포 앞에 서니 문득 어느 사진작가가 들려준 말이 생각났다. 세계 3대 폭포는 알다시피 나이아가라, 이구아수, 빅토리아 폭포다. 그 폭포들은 제각기 얼굴이 있단다. 이구아수 폭포는 원시림 속에 사는 원시인 모습이란다. 자연 그대로 울퉁불퉁한 황토물이 탱크처럼 밀려온단다. 빅토리아 폭포는 원기 왕성한 청년 같다고 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청년이 힘은 넘쳐나 세상을 다 부숴버릴 것 같은 기세로 쏟아져 내린단다.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는 성장한 예쁜 처자 모습이란다. 3대 폭포 중 처음 만났으니 이 모습이 가장 어울리는 모습이겠다.
가만히 서서 폭포를 바란 본다. 아침 일찍 깨어나 막 세수를 마친 처자 모습이라는데 나는 아직 모르겠다. 이구아수 폭포나 빅토리아 폭포를 보지 못한 탓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냥 입 벌리고 ‘우와~’ 그러고 서 있을 뿐이다. 두리번거리며 사진으로만 보았던 무지개를 찾는 데 없다. ‘어라? 왜 없지!’ 하는데 빗방울 두어 개가 얼굴에 떨어진다. ‘아참! 날씨가 흐리지’ 그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폭포에 압도당해 날씨가 흐린 걸 그만 잊고 있었다.
헬리콥터를 타다
무지개를 못 본 탓에 아쉬움을 안고 헬리콥터를 타러 갔다. 헬리콥터를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둘러보는 일이다. 한 번도 타 보지 못한 헬리콥터다. 생각보다 너무 비쌌지만, 이때 아니면.... 나이아가라 폭포를 하늘에서 보는 건데 싶어 두 말없이 거금을 냈다.
헬기장에 도착하니 바람이 세다. 쓰고 있던 모자가 휙 하니 날아간다. 얼른 뛰어가 주워 쓰고 보니 바람 부는 건 착각이었다. 지금 막 도착한 헬리콥터의 날개에서 쏟아지는 바람이었다. 날씨가 좋지 않아 걱정스럽다. ‘20년 경력의 조종사라니 괜찮겠지’ 하며 애써 마음을 추스른다. 헬리콥터에 타니 멀미기가 다가듦에도 눈은 저절로 창밖으로 향한다.
거센 물살이 세차게 흐르는 모습이 보인다. 미국 쪽 폭포와 캐나다 쪽 폭포가 한눈에 들어온다. 미국 쪽은 캐나다 쪽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해 보인다. 폭포 아래 다니는 유람선도 보인다. 폭포보다 얼마나 작은지 곧 쏟아지는 폭포가 집어삼킬 것 같이 위태롭다. 가슴마저 조마조마하다. 그 커다란 유람선이 손톱만 하게 보이니 폭포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스카이론 타워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그 기분을 안고 스카이론 타워에 올랐다. 저녁을 먹으며 나이아가라 야경을 보는 것이다. 연어 스테이크가 나오는 식사를 하면 한 층 위에 있는 전망대에서 폭포를 더 잘 볼 수 있다기에 올라왔다. 자리에 앉으니 어둠 속에 막 잠기고 있는 폭포가 한눈에 들어온다.
우아하게 저녁을 먹고 한 층 더 올라가려 했는데, 그 꿈이 무참하게 깨진다. 식사로 나온 연어 스테이크는 두 번 다시 먹을 맛이 아니었고, 차분하고 고상함을 기대한 내 꿈은 도떼기시장 같은 왁자함에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먹던 식사를 그만두고 한 층을 걸어 전망대에 올랐다.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이게 전망대라고. 쇠창살이 쳐진 공간은 우리 동네 공원 전망대만큼도 안 되었다. 아니 전망대라 부르기도 어렵다. 어두컴컴한 전망대는 폭력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공간이었다. 불은 들어오지도 않고 그 어떤 장식도 되지 않은 버려진 공간! 혼자 올랐다면 무서움에 떨 정도로 스산하고 음산했다. 서둘러 내려오면서 내 탓을 했다. 오기 전에 인터넷 검색을 안 해본 내 실수였다. 타워라고 이름 붙은 곳이니 타워가 거기서 거기겠지 했다.
사실 헬리콥터 타는 것도 그랬다. 돈은 많이 냈는데 요즘 말로 가성비가 형편없었다. 헬리콥터는 겨우 10분가량 탑승했다. 물론 여행이라는 것이 다 좋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쓰인 경비의 반은 만족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 얄팍한 내 마음은 속상하기 이를 데 없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내일은 괜찮겠지, 속상한 마음을 달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