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만이 내 세상' 최성현 감독 사극영화 '역린' 시나리오로 주목… 300장 넘는 영화 이미지 직접 그려
첫 작품이란 대개 욕심이 앞서 뜨겁고 간이 세기 쉬운 법이다. 17일 개봉한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은 48세 최성현 감독 연출 데뷔작이다. 알맞게 따끈했고 넘치지 않게 칼칼했다. 16일 서울 삼청동에서 최 감독이 "수제비 반죽을 오래 주무르는 심정으로 2년 동안 시나리오를 고치고 또 고쳤다"고 했을 때 이유가 비로소 이해됐다. 그는 "멸치 국물을 미리 내는 심정으로 영화 주요 이미지를 300장 넘게 직접 그렸다"고도 했다.
“어후, 배우도 아닌데요.”최성현 감독에게 거울을 보며 머리를 넘겨보라고 했더니 그렇게 말했다. 그는“감독은 사진 자주 안 찍어도 되니 좋다”고 했다. /남강호 기자
만화 스토리 작가였다. 경북 경주에서 나고 자라면서 줄곧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나와 만화 극작가로 일했다. 뮤지컬도 써봤고 간혹 드라마 극본도 썼다. 시나리오 공모전에 중간 중간 작품을 내봤지만 죄 떨어졌다.
2010년쯤 '이도 저도 아닌 건 그만하자' 싶었다. 일을 다 관두고 골방에 박혀 글을 썼다. 2014년 사극 영화 '역린' 시나리오를 내놓았고 작년 JK필름과 만나 '그것만이 내 세상'을 찍게 됐다. 최 감독은 "오래 만화 일을 한 게 큰 도움이 됐다. 영화 찍기도 전에 장면 대부분이 이미 머릿속에서 선명했다. 스태프들과는 그 머릿속 그림을 꺼내 손으로 그려 보이면서 이야기했다"고 했다.
운도 따랐다. 캐스팅이 특히 물 흐르듯 순조로웠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퇴물 복서인 주인공에 이병헌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다 쓰자마자 이병헌에게 보냈는데 단번에 "하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영화 '파수꾼' '동주'에서 눈여겨보았던 배우 박정민도 시나리오를 받고 바로 "도전해보겠다"고 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서번트증후군을 앓는 진태를 연기했다. 윤여정 역시 답이 빨랐다. "이병헌, 박정민이 한다는데, 나도 해야겠네." 최 감독은 "이 배우들이 주거니받거니만 해도 저절로 영화가 되더라. 굳이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었다. 숨죽여 지켜보다 '컷' 하면 그만이었다"고 했다.
영화 찍는 내내 가장 많이 했던 말도 "더 들어가지 말죠"였다. 최 감독은 "내용은 신파지만 굳이 바짝 들이대지 않고 강요하지 않고 무심하게 찍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는 딱 알맞게 끓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