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찾아간 경남 진주 덕천강가엔 비닐하우스 4500여 동이 바둑판 모양으로 좍 펼쳐졌다. 하우스 문을 열자 달콤한 딸기 향이 흠뻑 밀려왔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딸기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마을, 수곡면(水谷面)이다.
주민 2400여 명이 사는 작은 시골 마을이지만 지난해 해외로 나간 딸기 10개 중 4개가 여기서 자랐다. 농가 550여 곳이 딸기 농사를 짓는데 그 중 수출만 하는 농가가 170여 곳이다. 지리산 자락이라 일교차가 크고 물이 깨끗해 딸기가 더 달다. 수출용 딸기는 11월부터 5월까지 수확하는데 지금이 딱 제철이다.
문수호(55) 수곡덕천영농조합법인 대표는 "오늘 아침에 딴 딸기가 내일이면 비행기를 타고 동남아 마트에 깔린다"며 "작은 시골 동네지만 삼성 반도체 단지 같은 수출 전진 기지"라고 말했다.
◇농가당 매출 1억…대기업 퇴직자도 귀촌
원래 일본에 딸기를 수출하던 진주 지역 딸기 농가들은 2000년대 들어 동남아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일본 수출이 갈수록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더운 동남아 수출이 쉽지는 않았다. 수출 과정에서 딸기가 물러 돈을 물어주는 일이 다반사였다. 시행착오 끝에 육질이 단단한 '매향' 딸기가 수출용 전략 품종으로 낙점됐다. 매향 딸기는 국내 시장에 팔리는 '설향' 딸기와 달리 일주일씩 두고 먹을 수 있다. 원래는 환경에 민감한 품종으로 키우기가 어려워 기르는 농가가 거의 없었는데 진주에서 보배가 됐다.
최근 '딸기 한류'가 태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로 확산되면서 수곡면 딸기 농가의 연평균 매출은 1억원에 이른다. 5억~6억원어치씩 수출하는 집도 있다. 가업을 잇겠다는 청년도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문수호 대표는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대기업 퇴직자, 전직 학원장도 찾아온다"고 했다.
◇한국 딸기 향에 빠진 동남아
지난해 우리나라 딸기 수출액은 4299만달러(약 460억원)로 1년 전보다 33% 늘었다. 특히 태국과 베트남으로의 수출이 각각 42%, 134% 늘면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동남아에 딸기를 수출하고 있는 오성진 엘림무역 대표는 "한 달에 30만원 버는 근로자가 1만원짜리 딸기 한 팩을 사 먹더라"며 "우리가 1980년대 바나나를 먹는 것과 비슷한 풍경"이라고 했다.
최근 부쩍 늘어난 동남아 관광객도 '셀프 홍보대사'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한국을 찾은 태국과 베트남 관광객은 각각 44만명, 30만명이었다. 베트남 관광객은 1년 전보다 29% 늘었다.
이들이 최고로 꼽은 우리나라 명소는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의 딸기 농장이라고 한다. 주로 스키장, 남이섬 등과 함께 찾는다. 경기 양평에서 딸기 농장을 운영하는 김기춘씨는 "딸기 철인 요즘엔 매주 2~3팀이 찾아오는데 손님이 몰려 돌려보낼 때도 있다"며 "매출의 90%를 동남아 관광객들이 올려준다"고 했다. 본고장 딸기 맛을 본 이들은 돌아가서도 큰손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