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 은행 30일 실명제 시스템 가동...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도 도입 1일 1000만원·7일 2000만원 이상 입출금 시 FIU에 보고
실명 계좌가 확인된 사람들만 가상화폐를 거래할 수 있는 가상화폐 실명거래제가 이달 30일 시행된다.
그동안 가상화폐 거래에 사용하던 기존 가상계좌는 사용할 수 없으며 가상화폐 거래자의 개인 거래를 장부에 담아 관리하는 일명 ‘벌집계좌'도 차단된다. 실명거래를 이행하지 않는 가상화폐 거래소는 은행으로부터 계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고, 외국인과 미성년자는 가상화폐를 거래할 수 없다.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도 도입된다. 은행은 1일 1000만원 이상, 7일 2000만원 이상 가상화폐 거래 입출금 내역이 있거나 반복적인 입출금 행위가 있을 경우 의심 거래로 간주하고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해야 한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금융정보분석원(FIU)은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상통화 취급업소 현장 조사 결과 및 자금세탁 방지 가이드라인’ 브리핑을 하고 이같은 내용의 가상화폐 실명제 시행 대책을 발표했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번 대책으로 가상화폐 거래가 범죄나 자금세탁·탈세 등의 불법행위에 활용될 여지가 축소될 것”이라며 “자금세탁에 악용될 위험이 큰 가상통화 취급업소를 사실상 퇴출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이번 가상화폐 계좌 조사 자료 중 탈세 등 조세 관련 정보는 국세·관세청에, 불법재산 등 범죄와 관련된 정보는 검찰· 경찰 등 수사당국에 제공할 방침이다.
◆ 가상화폐 거래자 이름, 주소 등 모든 신상정보 확인...6개 은행 실명시스템 30일 가동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상통화 투기근절을 위한 특별대책 중 금융부문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금융위원회
가상화폐 거래소에 가상계좌를 제공했거나 제공 중인 6개 은행(KB, 신한, 하나, 우리, 기업, 농협은행)은 오는 30일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서비스 시스템 구축을 완료하고 가동에 들어간다.
가상화폐 거래소의 거래 은행과 같은 은행의 계좌를 보유한 투자자만 해당 계좌를 통해 입출금 서비스를 받게 된다. 가상화폐 거래소와 다른 계좌를 가진 투자자는 해당 은행에 방문해 실명확인을 거친 뒤 계좌를 개설해야 가상화폐를 거래할 수 있다.
금융위는 실명확인 절차를 통해 외국인과 미성년자의 거래를 차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자금세탁 등 문제의 소지가 있는 계좌는 직접적인 추적을 통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 또 기획재정부 등이 추진 중인 가상화폐 거래와 관련한 양도소득세 부과 등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도 시행된다. 금융사가 자금세탁 등 불법거래로 의심될 경우 즉시 FIU에 보고토록하고 계좌 공급까지 중단할 수 있는 근거를 포함했다. 특히 은행은 거래소가 거래금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는지 강화된 고객확인(EDD)을 시행해야 한다. 거래소의 금융거래 목적과 자금의 원천, 서비스의 내용, 실명확인 입출금계정서비스 이용여부 및 이용계획, 이용자의 생년월일·주소·연락처 등을 포함한 신원사항 확인 여부 등을 파악해야 한다.
은행이 FIU에 즉시 보고해야 하는 의심거래 판단 기준은 1일 1000만원, 7일 2000만원 이상의 입출금 내역이 있거나 1일 5회, 7일 7회 금융거래가 있을 경우다. 또 금융회사의 거래상대방 중 법인 또는 단체가 거래소와 금융거래를 할 때도 보고해야 한다.
FIU와 금감원은 가이드라인 내용을 금융업권별 연간 검사계획에 반영해 금융회사의 이행 여부를 지속해서 점검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점검 및 검사 과정에서 법령 위반 사항이 적발되는 금융회사에 대해선 엄중 조치하기로 했다.
◆ “일부 거래소는 폐쇄될 수 있어”
금융위의 이번 가상화폐 규제는 은행을 옥죄어 가상화폐 거래소를 간접적으로 단속하는 조치로 풀이된다.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실명확인, 거래소 내 의심행위를 모두 거래소와 계약을 맺은 은행이 담당토록 한 것이다.
은행이 만약 이같은 의무를 소홀히 할 경우 금융당국은 엄중 조치를 내린다는 방침이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금융사들은 자금세탁방지의무를 준수하고 거래소에 문제가 있을 경우 과감하게 계좌 제공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이번 규제안이 시중은행의 자금세탁방지 의무이행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로 보고 있다. 은행은 자금세탁 관련 조직을 확대하고 이사회·경영진에 자금세탁방지와 관련한 의무도 부여해야 한다. 임직원에 대한 교육과 자금세탁방지 관련 감사 등도 실시할 의무가 생겼다.
그러나 은행이 이같은 까다로운 절차를 준수하면서 가상화폐 거래소에 적극적인 계좌서비스에 나설지 주목된다. 특히 일부 중소거래소의 경우 은행을 속이고 벌집계좌 등을 운영해 왔고 이번 금융당국 조사에서 적발됐다.
이같은 거래소에는 금융사가 당장 계좌 발급을 중단할 가능성이 높다. 가상화폐 거래소가 은행 계좌를 제공받지 못하면 사실상 폐쇄되는 것과 같다. 입출금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해당 거래소를 통해 거래해 왔던 고객은 자칫 가상화폐를 현금으로 환전하지 못할 우려도 발생할 수 있다.
금융위도 일부 거래소의 폐쇄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고객의 자금을 회사 임직원 2~3명의 계좌에 모두 입금하고 해당 계좌를 통해 거래해온 거래소가 적발됐다. 해당 거래소의 경우 사실상 이번 규제를 만족할 시스템과 규모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군소 거래소여서 은행이 계좌 제공을 중단할 것으로 보인다.
김용범 부위원장은 “이런 중소 거래소 고객은 소위 잡코인(시가총액 규모가 작은 코인)을 거래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고 이런 부분이 취약하다(사고 발생 여지가 높다)”며 “은행이 계좌를 제공하지 여부는 자체 판단이지만, 심각한 평판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