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 전 조그만 꿈이 있었다. 꿈이라니 거창한 것 같지만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꾸는 꿈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집 하나를 시골에 갖고 싶은 꿈이었다. 퇴직 이삼 년을 앞에 두고 꿈을 찾아 컴퓨터 앞에서 살았다. 그제는 양양을 뒤지다가, 어제는 남해를 뒤지고, 오늘은 내 고향 강릉을 뒤지곤 했다. 실제로 꿈의 집을 찾아 현장에 가 보기도 하고, 그 집을 어떻게 리모델링할 것인지 밤잠을 설쳐가며 짓고 부셨다. 먼저 시작한 선배들을 보면서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때는 정년퇴직 1년 후였다.
선배 한 분은 제2 인생을 양양 산골에서 시작하셨다. 한 해, 두 해, 흐르면서 겨울만 다가오면 가슴이 두근거려 심장이 멎을 것만 같다고 하셨다. 결국, 겨울에 살 아파트를 올해 장만하셨다. 강원도 영동 지방은 겨울이면 눈 천국이다. 눈이 내렸다 하면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건 기본인데 산골에서 그 겨울을 나는 것이 너무 끔찍했단다. 감옥 아닌 감옥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귀촌의 꿈은 깨끗이 접고 사는 아파트에 정 붙이며 산다. 그런 내가 세계적인 부자들의 별장이 모여 있다는 천섬으로 간다 하니 접어버린 꿈이 새삼 떠오르며 그들의 삶이 무척 궁금해졌다.
캐나다 킹스턴의 천섬
천섬은 1,800개 이상 되는 조그만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프린스 에드워드 반도로부터 캐나다 온타리오주 브록빌에 이르기까지 128㎞가량 펼쳐져 있다. 서쪽에 있는 섬들은 대부분 캐나다령이며, 그라인드스톤·웰스·칼턴섬 등 동쪽 섬들은 미국 뉴욕주에 속한다. 이곳에서는 최소한 나무가 두 그루 이상 있어야 섬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이곳은 세계 많은 부호의 여름 휴양지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거주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겉모양만이라도 그들 부호가 사는 모습을 엿보려고 하는 것이다.
버스에서 배가 있는 가나 노크 선착장에 내리니 우리 팀이 단연 선두다. 부지런한 가이드 덕에 1순위로 타게 되었다. 줄을 서라더니 화장실은 줄 서고 난 뒤에 한 명씩 다녀오라는 말도 덧붙인다. 참으로 대단한 가이드다. 10여 분쯤, 시간이 지나자 수많은 관광버스가 들어오고 그 버스마다 관광객을 쏟아 놓는다. 순식간에 선착장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대부분 관광객이 그러하듯 우리는 1시간 30분 코스를 도는 배를 탔다. 3시간 코스는 그 배에서 점심을 먹으며 구경하는 유람선이란다.
승객을 가득 태운 유람선이 서서히 선착장을 떠났다. 세인트로렌스 강을 따라 내려가는데 바람이 거세다. 혹시나 바람이 불면 어쩌나 싶어 두르고 온 스카프로 머리를 감쌌다. 바람이 부는 곳에서 사진을 찍어 본 사람은 알고 있으리라. 바람이 센 날 사진을 찍으면 어김없이 산발한 귀신같은 사진이 된다는 것을. 머리에 스카프를 두르고 재빨리 사진 찍기 좋은 3층으로 올라갔다. 잠시 바람 속에 서서 천섬 구경에 나섰다. 예쁜 엽서 같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동화 속 풍경 같다.
커다란 섬에 성채 같은 집이 있는가 하면, 그야말로 손바닥만 한 섬에 방 1칸, 부엌 1칸짜리 아기자기한 집도 보인다. 저 작은 집에 과연 사람이 살까 싶은데, 분명 선착장이 있으니 사람이 살긴 사는 모양이다. 배는 유유히 그림 같은 풍경으로 들어가며, 그 자체로 풍경이 되고 있었다. 비록 잔뜩 찌푸린 날씨였지만, 아름다운 천섬의 풍경을 지울 수는 없었다. 풍경에 취해 있다가 쿡쿡 웃음이 나왔다. ‘정숙’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라는 팻말들이 눈에 들어온 탓이다. 우리야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있지만, 사는 이들에겐 관광객이 그리 반갑지 않은 방문객인 모양이다.
마음 같아서는 배에서 내려 아름다운 집을 잠깐이라도 엿보고 싶지만, 그 어느 섬에도 내려주지 않았다. 섬 하나하나가 개인 소유이니 배에서 섬으로 내리는 순간 가택 침입이 된단다. 속상한 마음을 달래주려는지 마침 그 유명한 볼트 성이 눈앞에 나타났다. 지금까지 봐온 섬들보다는 널찍하고 시원스럽다. 이 성은 미국의 부호 조지 볼트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밸런타인데이 선물로 샀단다. 볼트가 하트 모양의 이 섬에 아내에게 줄 성을 짓고 있던 중 아내가 죽었단다. 70여 년 후, 미완성인 채로 버려진 성을 한 회사가 구입해 완성하고 지금은 관광지로 이용하고 있다. 유일하게 관광객이 내릴 수 있는 섬이란다. 아마도 이렇게 해서 전설이 생겨나는 모양이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인생이란 살고 싶은 대로 살아지지 않는 모양이다. 대부호의 인생도 그럴 진데 하물며 내 인생은…. 하다가 혼자 씩 웃고 만다. 행복이란 것이 돈에 좌우되지 않고, 마음 갖기에 따른 것이란 것은 안다. 그렇지만 나는 속물이다. 한때는 돈만 많으면 하고 싶은 것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이다. 물론 지금이야 만족하며 산 지 오래되었다. 내가 나를 잘 아는 탓이다. 욕심부린다고 될 일이 아니란 것을 아는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