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간 언니'의 유쾌한 복수

한껏 올려 세운 머리, 짙은 파란색 아이섀도, 망사 스타킹까지. '한물간'여자 개그맨 다섯이 1980년대 복고풍 콘셉트로 등장했다. 송은이(44), 신봉선(37), 김신영(34), 김영희(34), 안영미(34)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 '셀럽파이브'. 평균 나이 36.6세인 이들이 유로 댄스 가수 앤지 골드(Angie Gold)의 노래 'Eat you up'에 맞춰 군무를 추는 영상이 지난 주말 온라인을 휩쓸었다. 영상은 140만 조회 수를 기록했고 '셀럽파이브'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렸다. 이 그룹의 제작자는 개그맨 송은이다.

기획자로 변신한 송은이가 유튜브로 만든 콘텐츠들이 방송계를 흔들고 있다. 셀럽파이브는 송은이가 만든 유튜브 채널 '비보TV'의 웹 예능 '판벌려(판을 벌이는 여자들)'에서 지난 9일 처음 공개됐다. "선배님, 저 하고 싶은 것 하나 생겼는데요. 뮤직비디오 하나 찍으면 어때요?" 김신영이 송은이에게 건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된 이 그룹은 5분 내외 영상으로 공개됐고, 업로드 8일 만인 지난 17일 MBC뮤직과 MBC에브리원 '쇼챔피언'에 출연하며 TV에도 입성했다.

지난해 예능계 핫 아이콘이었던 김생민도 송은이가 탄생시켰다. '무한걸스' 이후 대표작이 없던 송은이는 2015년 4월 김숙과 함께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을 시작했다. '엄마에게 혼나지 않고 최대한 늦게 집에 들어가는 법' 등 소소한 고민을 풀어주던 이 방송은 한 달 만에 코미디 부문 순위 1위에 올랐다. 김생민은 이 프로에서 청취자들 소비 습관을 분석해주는 '영수증'을 맡았다. 코너가 인기를 끌자 KBS는 '김생민의 영수증'을 정규 편성했다.

송은이는 콘텐츠 제작 회사 '컨텐츠랩 비보'의 대표. 팟캐스트로 성공한 뒤 2016년 1월 아예 회사를 차렸다. 이들은 그해 2월 유튜브에 '비보TV' 채널을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었다. 웹 예능 '쇼핑왕 누이' '판벌려', 웹 드라마 '나는 급스타다' 등 7개에 달한다. 5분 내외로 편집해 올리는 영상들은 유튜브에서 적게는 1만회, 많게는 70만회의 재생 수를 기록한다. 송은이가 제작한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김생민을 빼고는 대부분 여성들. 황보, 이승신, 장도연, 신봉선, 안영미 등 후배 여자 방송인들에게 '판'을 깔아주는 것이 송은이 몫이다. 그는 2014년 한 케이블 예능 방송에 출연해 "김숙과 나는 종종 '애하고 시어머니가 없어서 방송 못 한다'는 농담을 한다"며 여자 예능인의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예능에서 중년 여성 방송인이 출연할 수 있는 프로는 가족 예능이나 고부 갈등 토크쇼라는 현실을 꼬집은 것. 김숙은 MBC 무한도전에서 "요리 예능에도 셰프는 모두 남자라 여자 예능인이 설 자리가 부족하다"며 "요즘 송은이는 일거리가 없어 마흔셋 나이에 엑셀을 배우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랬던 송은이와 김숙은 팟캐스트와 유튜브로 자신들 '끼'를 맘껏 발산하고 있다. 지난달 25일에는 팀 '더블V'라는 이름으로 음악 앨범 '3도'를 발매했다. 송은이는 2월 방송되는 TV조선 볼링 예능에도 고정 출연한다. 일이 없어 1인 미디어를 탈출구로 삼은 40대 중반 송은이가 방송계 판을 흔드는 유쾌한 '복수극'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