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1.23 22:39

[야당 주최 강연서 작심한 듯 속도조절론 펼쳐]

기재부는 속도조절 방안 찾아
청와대·각 부 장관들은 소상공인 달래기용 대책 쏟아내

청와대와 관계부처 장관들이 지난주부터 최저임금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뒤늦게 정부대책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최저임금 인상을 현실에 맞춰 추진하자는 '속도조절론'을 말하기 시작했다. 관가 안팎에선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 반발이 거세지자 청와대와 각 부 장관들은 밀어붙이기를, 부총리는 현실에 맞게 정책을 재검토하는 안을 들고 나온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최저임금 인상이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현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 과제이지만 그 추진 방식을 놓고 정부 내에도 온도차가 있다는 얘기다.

◇"현실 살피면서 가자"는 부총리

김동연 부총리는 지난 22일 오전 자유한국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주최 강연에서 최저임금 인상 속도에 대해 "여러 우려가 있는 것으로 안다" 며 "중소기업, 영세상공인의 상황을 감안해 큰 틀에서 신축적으로 보겠다"고 했다. 그는 "이미 올해 상반기 상황을 보고 제도 보완 또는 일자리안정자금의 연착륙 방안을 만들겠다"고 했다. 정부 안팎에선 야당 소속 연구원 강연에서 부총리가 작심하고 말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부총리는 앞선 18일 중소기업중앙회 강연에서도 최저임금 속도 조절 필요성을 언급했다.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이 속출하는 가운데 김동연 경제부총리가“현실을 살피면서 가자”는 속도 조절론을 펴기 시작했다.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이 속출하는 가운데 김동연 경제부총리가“현실을 살피면서 가자”는 속도 조절론을 펴기 시작했다. /이태경 기자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최저임금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지금 언급하는 것은 적당치 않다"고 했었다. 이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은 필요하지만 한 해 올리는 수치 16.4%는 나도 남에게 통보받은 것이고, 재정에서 3조원을 풀어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것도 한시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최저임금 인상 폭과 정부 지원방안 모두 기재부가 배제된 상태에서 급조된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그는 "작년 최저임금 인상에 합의할 때도 야당에 2가지 단서를 약속했다. 하나가 3조원 지원이 한시적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최저임금이 1만원에 도달하는 시기를 2020년으로 못 박지 않을 것이었다"고도 했다.

기재부 안팎에선 최저임금 도입에 따른 반발이 거셌던 사태 초반, 청와대와 각 부 장관들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몸을 사렸던 데 대해 불만의 목소리도 있다.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주도한 사람이 따로 있었는데, 일 터지니까 나서는 이가 없더라"며 "1월 2일에 근로복지공단에 가서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을 점검하려 했더니 거기서도 준비가 안 됐다고 했었다"고 했다.

◇청와대와 장관들은 '상인들 달래기'용 대책 흘려

경제부총리와 청와대·각 부 장관 최저임금 입장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줄일 방안을 찾자는 기재부와 달리 청와대와 각 부 장관들은 "최저임금은 무조건 필요한 정책"이라며 정책 홍보와 추가적인 소상공인 지원안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21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서비스업도 최저임금 지원대상자 선정 때 초과 근무수당을 제외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라고 했고, 같은 날 김영주 노동부 장관도 서울 마곡동의 한 커피숍에서 "자영업자의 인건비를 비용으로 인정해 세액공제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두 방안은 모두 정부 내에서 조율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자영업자들을 달래려고 세금 혜택을 야금야금 내주면 공평과세 원칙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며 "코너에 몰리니까 당장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하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다른 정부부처 실무자도 "장관들이 청와대 코드에 맞추려고 약속이나 한듯 현장에 몰려다니고 있다"며 "부처마다 자기들 생각하는 대로 말하면 뒷감당은 누가 다 하나"라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장관들의 정책홍보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22일 기자회견에서 "늦어도 2월 첫 주 안에 (일자리안정자금) 추가 대책이 나와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며 상인들을 달래기 위한 추가 방안을 내놓겠다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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