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값 1만4800원의 경제학

'그 겨울의 일주일' '위대한 중서부의 부엌들' '죽음을 사랑한 소년' '빙상의 전설' '맛 읽어주는 여자' '놀이와 게임으로 만나는 코딩의 세계'…. 소설과 교양서와 어린이책 등 이달 쏟아져 나온 이 책들의 공통점은 바로 책값이다. 장르를 불문하고 모두 1만4800원. 1000이나 500 단위로 딱 떨어지지 않는 이 모호한 가격에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취업 포털 잡코리아의 20~30대 직장인 2427명 대상 설문에 따르면 직장인 하루 평균 지출액은 1만4800원. 식비나 교통비, 커피·담뱃값 등으로 매일 빠져나가는 돈이라 크게 거부감 없는 액수라는 얘기다. 최근 출간된 영국 장편소설 '콘클라베'를 1만4800원으로 책정한 알에이치코리아 관계자는 "1만4800원은 큰 가격 저항력 없이 두께 있는 번역 서적을 집어들게 하는 마지노선"이라고 귀띔했다.

SF 소설 전문 출판사 아작이 내놓는 거의 모든 책은 1만4800원이다. 25일 출간된 '별의 계승자' 3권도 마찬가지. 출판사에 따르면 소설의 경우 번역비를 제외하더라도 종이값과 인쇄·제본 비용 등 순수 제작비만 책값의 30%로, 유통비나 번역비·인세 등을 합치면 책 한 권 만드는 데 7000~8000원 수준이 든다. 아작 관계자는 "서점에 납품할 때는 정가의 60~70%를 받기에 수익을 내려면 권당 1만5000원은 받아야 하지만 조금이라도 가격을 적어 보이게 하려고 '8단위' 마케팅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가구당 월평균 도서 구입비는 1만5335원으로 감소세. 그래픽노블 전문 출판사 미메시스가 400쪽짜리 양장본 신작 '못 그린 그림'을 1만4800원에 책정한 이유도 이것이다. 미메시스 측은 "올 컬러이고 일반 책보다 두꺼운 종이를 써 제작비가 두 배 든다"면서도 "만화책이 1만5000원을 넘어가면 '왜 이렇게 비싸냐'는 반응이 먼저 나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장은 "도서정가제와 최저임금·물가 인상 등의 여파로 할인 여력이 거의 없는 출판사들의 가격 고심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