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큼만 해" 감독 말에… 더 연기하고 싶어졌다

제아무리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이야기도 배우 심은경(24)을 만나면 찰떡처럼 쫀득해진다. '써니'에서 눈 흰자위를 보이며 빙의 연기를 할 때도, '수상한 그녀'에서 몸만 처녀가 돼버린 70대 할머니 연기를 할 때도, 관객은 '그럴듯하다'며 설득당하곤 했다.

31일 개봉하는 영화 '염력(감독 연상호)'에서 심은경은 어린 시절 집을 나갔던 아빠(류승룡)가 갑자기 초능력을 얻게 된 것을 지켜보는 딸을 연기했다. 아빠가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건물을 통째 옮기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 붕 뜬 만화적 설정을 2018년 서울에서 일어난 현실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게 심은경이다. 화장기 없는 얼굴, 물로 씻은 듯 맑고 새까만 눈동자, 미세한 떨림과 분노를 줄넘기하듯 가볍게 넘나드는 표정을 보며 관객은 이 상상 속 이야기에 몰입할 것이다. 25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심은경은 "류승룡 선배가 초능력자를 연기했다면 나는 아주 평범한 사람을 연기해야 했다. 아침마다 TV에 나오는 생활 정보 프로그램들을 돌려 보면서 열심히 돈 벌고 일하고 하루하루 사는 보통 사람들 모습을 열심히 관찰했다"고 했다.

심은경은 11세에 연기를 시작했다. 소심하고 부끄럼 많은 딸이 걱정돼 부모님이 연기학원에 보냈다. 2003년 MBC 드라마 '대장금' 아역으로 주목받았고 영화 '써니(2011)' '광해(2012)' '수상한 그녀(2014)' 등에 연달아 출연하면서 어느덧 '흥행 배우'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심은경은 그러나 "돌아보면 그 무렵이 내겐 가장 쉽지 않은 시기였다"고 했다. "너무 갑자기 뜻밖의 관심을 한꺼번에 받았어요. 사람들이 어디서나 저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인터넷엔 제 연기를 평하는 댓글이 주르륵 달렸죠. 부담스럽고 위축됐어요. '다음 작품에서 혹시 내가 잘 못하면 흥행이 안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이 절 짓눌렀고요."

집에 숨어드는 날이 많아졌다.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고 잠들어도 잠든 게 아니었다. '배우가 내게 정말 맞는 옷일까' '지금이라도 다른 일을 찾아나서야 하나' 고민도 했다. 그러다 '염력'을 만났다. 촬영 현장에서 배우 류승룡은 머리를 감싸쥐고 연기 톤을 고민하는 심은경을 손가락을 까닥여 부르더니 말했다. "네 나이엔 고민 안 하고 그냥 부딪쳐도 돼. 더 맘껏 놀고 더 맘껏 돌아다니고 더 맘껏 움직여." 연 감독도 말했다. "딱 이만큼만 하면 돼. 더 하려고 애쓰지 마." 심은경은 "그동안 촬영을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심정으로 했다면 이번엔 정말 노는 것처럼 찍었다"면서 "이것도 과정이겠죠?"라고 물었다. 그 땡그랗고 까만 눈동자를 보며 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렇고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