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미국에서 552만배럴의 원유를 수입했다. 2016년만 해도 미국산 원유 도입 실적은 '0'이었다.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도입한 원유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 등 중동산의 비중은 78%로 높았지만 전년과 비교하면 2.6%포인트 감소했다. 중동산 비중이 줄어든 만큼 미국산 도입 비중이 늘었다. 중동 산유국의 감산으로 중동산 원유 가격이 치솟은 반면 미국의 셰일오일은 생산량 증가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미국산 도입량을 늘린 것이다.
◇중동산 원유 도입 10년 새 최저
그동안 국내 정유업체는 중동 지역의 정세 불안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미주·아프리카보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물량 확보가 쉽다는 이유로 중동산 원유 비중을 85%에 가깝게 유지해 왔다. 이 때문에 중동 산유국들은 아시아 지역에 판매하는 원유 가격을 다른 지역에 비해 높게 책정하기도 했다.
/AP 뉴시스
그러나 지난해 국내 정유사가 수입한 중동산 원유의 비중은 10년 새 최저치를 기록했다. 28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총 원유 수입은 11억1817만배럴로, 이 가운데 중동산의 비중은 81.7%(9억1345만배럴)였다. 전년 85.9% 대비 4.2%포인트 감소한 것이다. 지난 2007년 80.7%를 기록한 이래 10년 새 가장 적은 비중이다. 반면 지난해 미국·멕시코 등 미주산(産) 도입량은 4445만3000배럴로 전체의 4.0%를 차지, 1년 전(2.8%)보다 늘었다. 10년 전 미주산의 비중은 0.2%에 불과했었다.
중동산 원유 가격 상승과 미국 셰일오일 증산(增産)의 영향으로 국내 정유 4사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인 아람코가 대주주인 에쓰오일을 제외한 국내 3개 정유사의 미국산 원유 도입량이 2년 새 5배 가까이 늘었다.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미국산 원유 1232만배럴을 수입했다. 3사의 미국산 원유 도입량은 2015년 220만배럴, 2016년 245만배럴에 그쳤었다.
◇美 셰일오일 영향, 미주산 원유 가격 경쟁력 상승
특히 GS칼텍스는 '탈(脫)중동' 성향이 뚜렷하다. 지난해 GS칼텍스의 원유 도입 상위 5개국 가운데 중동 국가는 아랍에미리트·이라크·사우디아라비아 등 3개국이다. 2014년까지만 해도 상위 5개국은 모두 중동 국가가 싹쓸이했다. 그러나 2015년 러시아가 5위로 등극했고, 2016년부터는 러시아와 영국이 각각 4~5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GS칼텍스는 미주산 원유 도입량도 늘리고 있다. 지난해 미국산 원유를 480만배럴 도입했고, 멕시코산도 770만배럴 도입했다. GS칼텍스 관계자는 "미국의 셰일오일 증산으로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약세를 보이고 있고, 원유 수송 운임이 하락하는 등 경제성이 확보돼 북미산 원유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오일뱅크도 지난해 미국산 원유 200만배럴을 도입했다. 현대오일뱅크는 2015년부터 멕시코산 원유 수입량도 늘리고 있다. 지난해엔 멕시코산 원유를 2027만배럴 도입, 3위를 기록했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멕시코산 원유는 중동산 원유보다 값이 싸다"며 "원가 경쟁력 확보와 원유 도입처 다변화 등을 위해 멕시코산 원유 도입 비중을 늘렸다"고 말했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박사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산유국들의 감산 연장 합의와 중동 지역의 정세 불안이 이어지면서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은 상승한 데 반해 서부 텍사스산 원유는 미국 셰일오일 개발로 공급이 늘어나면서 가격 상승폭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산 수입이 늘었다"며 "가격 변동에 대비하고 안정적인 원유 확보를 위해 중동 의존도를 낮추고 도입처를 다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