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듯한 아이 속 '상처'를 보세요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유명한 동화작가 황선미(55)의 지난 석 달은 전기장판, 자도 자도 끝없는 밤, 냉한 공기로 압축된다. "지난 10월 말부터 혹독한 겨울로 유명한 스웨덴에 머물렀어요. 제 책 '마당을 나온 암탉'과 '푸른 개 장발'이 스웨덴에서 번역돼 나왔거든요." 스톡홀름 시내를 걷다 서점이 보이면 무작정 들어가 매대에 놓인 자신의 책을 찾아봤다. "회토리예 광장의 한 서점에서 '마당…'을 발견하곤 신이 나 사진을 찍고 있었어요. 갑자기 점원이 다가오더니 '그 책은 닭이 주인공인데, 읽어보면 삶에 쉼표 같은 느낌을 줄 거야'라고 설명해주는 거예요. 신기하고 이상한 느낌이었죠." 자신이 이 책의 작가라고 밝히니 점원은 깜짝 놀라며 자기네 서점이 보유한 책에 모두 사인을 해달라고 청했다.

황선미는 우리 아동문학계에서 보기 드문 블록버스터급 작가다. 2000년 5월 출간된 '마당…'은 국내 아동 서적 분야에서 처음으로 100만부 넘게 판매돼 밀리언셀러가 됐고, 영문판은 영국 대형 서점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신작 '할머니와 수상한 그림자'(스콜라)를 들고 30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그는 "이번엔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열세 살 기훈이가 비밀을 간직한 할머니와 여러 사건을 겪으며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을 풀어썼다"고 했다. "부모의 보살핌을 못 받고 자라는 아이의 상처투성이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아이에게 진짜 필요한 건 뭔지 조부모와 손자의 관계를 통해 짚어보고 싶었어요."

또래보다 어른스럽고 생각이 많은 기훈이는 어릴 적 그를 닮았다. 충남 홍성에서 농사를 짓다 가난으로 곤두박질친 부모는 모든 에너지를 생계에 바쳤다. 2남3녀 중 맏딸로 태어난 그는 아홉 살 때부터 일 나간 엄마를 대신해 밥 짓고 동생들을 돌봤다. "안 하면 동생들 잘못까지 제가 다 야단맞으니 늘 눈치를 봤죠. 어른들은 살림 밑천이라고 칭찬했지만 저는 부당하다고 느꼈고, 결국 상처로 남았어요. 눈치껏 잘하는 애들을 어른들은 좋아하지만, 아이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원인을 누군가 한 번은 알아봐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이번 동화는 한·중 공동 개발 프로젝트다. 지난해 5월 펴낸 '건방진 장루이와 68일'에 이은 일종의 '관계' 시리즈다. "중국 한 출판사에서 어린이 주변을 둘러싼 인간관계에 대해 동화를 써달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중국도 아이를 하나만 낳아 키우면서 관계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잖아요. '장루이…'는 친구 사이의 갈등과 성장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예요. 스웨덴에서 완성한 세 번째 작품을 포함해 앞으로 관계에 대한 모두 다섯 편의 동화를 쓸 거예요."

초등학교 6학년 이후 세끼 밥 먹듯 하루도 빠짐없이 소설을 써왔다. 책 읽을 형편이 안 되니 황선미는 자기만의 성(城)을 쌓고 그 안에 모든 감정을 꾸깃꾸깃 집어넣었다. 그렇게 쓴 마지막 원고가 아버지에 대한 각별한 추억을 담은 첫 책 '내 푸른 자전거'다. "저는 '관찰'이 특징이에요. 지금도 지나가던 사람이 한눈팔다가 고꾸라질 뻔한 순간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죠." 그는 "나는 다양하게 보지는 못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모든 걸 늘 열어놓으려고 한다. 뻔하게 쓰는 건 지겨우니까"라고 말했다.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