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백시로 들어선 후 언덕을 올라 15세기에 만들어진 성곽 안으로 들어갔다. 프랑스풍의 올드 퀘벡으로 들어서는 일은 신비로웠다. 캐나다라는 나라가 탄생하기 훨씬 전에 북아메리카로 건너온 이주민이 만든 성곽 도시로 들어가는 길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막 절정을 지나가는 단풍들이 산비탈에, 길 가 가로수에 늘어서 있었다. 비는 내리고 15세기 프랑스 건물들과 단풍까지 어울려져 고즈넉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뭐랄까? 해가 서산으로 막 넘어가는 들판 길을 누군가 터벅터벅 걸어가는 사진 한 장을 보는 느낌이랄까?
성안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모든 것들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4백 년이나 지난 건물들이 그 당시 그 모습을 지키고 살아간다는 것! 내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우리나라 속담처럼, 변하는 것에 익숙한 내 눈엔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건물 창문들이 눈길을 확 잡아끈다. 회색빛 경사면에 돌출된 다락방의 작은 창문들이다. 비 오는 날씨임에도 창문들은 그 건물 하나하나에 활기찬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샤토 프롱트낙 호텔
눈길이 자연스럽게 위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벽에 보이는 창문들엔 나무로 만든 덧문이 달려 있다. 거센 비바람과 눈 폭풍을 견디게 만든 덧문이다. 이 덧문은 스쳐 가는 나 같은 여행객들에겐 기능적인 면보다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창문틀에 군데군데 서 있는 동상들과 함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거칠게 잘라 쌓아 올린 돌로 만든 벽하며 검은빛 동상과, 밝은 프랜치 블루의 창틀과, 검은 나무 덧문들이 묘하게 어울려 있다. 그 자체가 어느 작가가 몸과 마음을 다해 만들어 놓은 예술 작품처럼 보인다.
샤토 프롱트낙 호텔
언덕 위 올드 퀘벡의 마을 꼭대기에 올랐다. 그곳에는 그 유명한 샤토 프롱트낙 호텔이 있다. 호텔 앞에 도착하니 비가 더 세게 내린다. 그래도 어쩌랴! 안 되면 즐기라고 신나게 샤토 프롱트낙 호텔 앞 광장으로 들어섰다. 올드 퀘벡의 중심에 우뚝 솟은 샤토 프롱트낙 호텔은 1892년 공사가 시작되어 1993년 완성된 호텔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100년이 넘는 그 긴 시간, 수많은 사람 손을 거치면서 최초 설계와 전혀 엉뚱하게 변경됐거나 흉물스러운 건물로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삼 그들의 끈기가 부럽다. 타인을 존중하며 지켜가는 게 부럽다. 처음 설계자의 의견을 그대로 이어받는 전통이 부럽다.
그 덕분에 샤토 프롱트낙 호텔은 당연히 사적지로 지정되었다. 퀘벡 시민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았다. 퀘벡시티의 상징이 되었다. 세계 제2차 대전 때는 루스벨트 대통령과 처칠 총리가 만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결정한 연합군 회의가 열렸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사실 우리에게 이 호텔이 유명해진 것은 ‘쓸쓸하고 찬란한 神-도깨비’에서 도깨비 공유가 분한 김 신이 소유한 호텔로 나온 덕분에 알게 된 호텔이다.
비도 피할 겸 지붕이 있는 호텔 광장 옆 나무로 된 테라스에 올라섰다. 세인트로렌스강이 유유히 흘러가는 게 보인다. 약 5층 높이로 보이는 유람선 한 척이 비 오는 선착장에 서 있다. 비안개와 어울려 한 장의 그림엽서 같다. 비 오는 강을 무심히 바라보다 돌아서니 프랑스의 성처럼 뾰족뾰족한 지붕의 웅장하고 견고한 샤토 프롱트낙 호텔이 그 위용을 자랑하며 다가온다. 600개가 넘는 객실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수많은 창문이 보인다. 비가 안 오면 호텔로 들어 가 호텔 투어 가이드와 함께 내부도 구경하고 싶었지만 애써 누르고 만다.
드라마 ‘도깨비’ 김 신의 무덤을 찾아 아브라함 언덕으로 갔다. 1759년 프랑스군과 영국군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 전투의 공원이라고도 불린다. 드라마에서도 봤겠지만 비탈진 잔디밭이 있던 언덕이다. 생각보다 넓다 못해 광대하다. 우리나라 공원에 있는 잔디밭만 보다가 보니 더 그렇게 느껴진다. 넓다는 것에 감탄하다가 '그럼 김 신의 무덤은?' 두리번거리며 찾아도 김 신의 무덤은커녕 이 나라 사람의 무덤도 하나 없다. 결국 CG(컴퓨터 그래픽)였단 말인가? 다 믿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무덤 한두 개쯤은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너무 순진했다.
그래도 좋았다. 빗속에 내려다보이는 퀘벡의 풍경도 좋았고, 세인트로렌스강이 유유히 흐르는 것도 좋았다. 아마도 나는 오랫동안 이 느낌을 간직하며 추억할 것이다. 여행은 그래서 하나 보다. 무엇인가 느낌을 가지고 일상생활에서 오래오래 그 여행을 추억하며 음미할 수 있기에 떠나고 또 떠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