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2.07 13:11

2500년 전 즈음, 공자는 50세를 넘기면서 하늘의 뜻을 알았다고 한다. 60세가 되어 세상 이야기를 제대로 들었고, 70세가 되어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나이는 요즘 같으면 아마 100세를 훨씬 넘긴 나이일 것이나, 50세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태어나 성인이 되어 한 세대가 지나, 다시 자식이 성인이 되는 나이가 50세라는 시점에서 그러하다.
  
나이를 10년 단위로 반올림한다면, 너나없이 50세부터 모두 100세다. 의미상 뭉뚱그려져 나이가 같아진다는 말이다. 이쯤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고, 세상사 어떠한 말이든 받아들이며, 법 없이 살아야 하리라. 인생을 반올림하는 순간, 어쩌면 우리는 서로 같은 마음가짐으로 이 세상을 살아야 하리라. 반올림 이전은 손에 움켜쥐는 것만 했으니, 이제 내려놓는 즐거움을 누리라는 것이다. 참, 이론적으로 보면 모두 공자처럼 성인품에 들어야 하는 듯하다.

조선일보DB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이것은 이론일 뿐, 현실은 이론에서 벗어나도 너무 빗겨져 있다. 현실적인 문제로 인생 반올림 시점을 지나면서 자녀 문제가 골머리를 썩인다. 이외에도 사회의 중심자 역할에서 점차 뒤편에 서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시기다. 새로운 삶의 역할을 다시 해야 하는 시기이다. 서로 잘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장밋빛 반올림 인생은 대부분 사람에게는 꿈의 한 장면일지 모른다.
  
더욱 큰 문제는 현대 과학의 시대를 사는, 현재 반올림 인생을 사는 사람들, 바로 우리다. 대부분 중년의 나이를 넘어서는 이들은 과거 신문과 방송을 통해 일방적으로 정보를 입수하는 습관에 익숙했다. 그러나 이래저래 하는 사이에 지금은 내가 원하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찾아보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다. 새로운 습관을 들이는 데 익숙하지 못한 나이에, 고성능 컴퓨터를 손에 들고 다녀야 하는 즐거움을 추가로 느끼게 되었다.
 
특히, 고도의 첨단문명시대로 넘어가면 갈수록 네 것, 내 것 구분이 없어지며 경쟁 구도가 점점 없어지는 추세다. 즉, 이 세상은 나이와 상관없이 공평해지리라는, 쓸데없을지도 모르는, 걱정 아닌 걱정을 또 해보게 된다. 허, 참! 나이란 그저 숫자일 뿐이고, 반올림 인생이란 말도 잠깐 스치는 단어일 뿐인가? 반올림의 기준이 없어지니 누구나 비슷한 생각으로, 그래서 비슷한 품격으로 살아가리라는 의미만 남는 것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하게 된다.
  
이즈음에서 지금 반올림 세대가 폭넓게 직시해야 할 일을 다시 확인해 보고 싶다. 물론 과거 어느 시대에도 그랬을 터이지만, 나 또한 반올림까지 생존을 위해 앞만 보고 경제 활동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지사, 그러하오니 현재 펼쳐져 있는 상황을 실감하고, 그래서 현재 모습을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으리라. 가진 것이 이렇구나, 내 몸은 아픈 곳이 어디구나, 가족은 또 친구는 그리고 또 아는 사람은 누구구나, 지금 하는 일은 무엇이고, 또 하고 싶은 것들은 이러저러하구나 하는 등등.
  
그래, 어쩌면 나를 자주 인정하는 일에서 새로운 개념의 느낌표가, 나만의 행복지수가 생겨날지 모른다. 어쩌면 반올림 인생과 상관없이, 결국 새로운 나이 기준과 그에 따른 품격이 나로부터 시작해 다시 정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기왕지사 인생도 반올림했으니 행복도 반올림한다면, 반올림 행복은 기존 행복과 어떻게 다를까? 행복이란 단어 대신에 다른 단어가 사용되는 것은 아닐까?
 
아닐 것이다, 세상사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도 아무리 내가 달라지더라도, 허 그것참, 더 특별할 게 없으니, 세상사 몇 개를 반올림해 반올림된 내 몸에 넣는 수밖에. 넣고 나서 그대로 잡고 웃어야 할 것이다.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란 절반의 행복 또 절반의 절반의 행복을 계속하여 내려놓는 일에 불과하다. 그때마다 웃으며 말이다.
  
맞다. 지금은 잘 맞추었다! 기왕지사 반올림 인생이 되었으니, 그 이후의 나이가 어떠해지든 상관없이 이제 나만의 반올림 행복을 다시 확인해야 할 일이다. 누구나 지금을, 반올림 인생을 사는 지금을, 이 지금은 내 선택이라며, 선택한 즐거움을 만끽해야 할 일이다. 공자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사람이 그 많았던 지금을 조용히 즐겼으리라 확신해본다. 하, 말은 참 쉽다. 과연, 지금 이 글을 쓰는 행위가 2018년도 지금을 즐기는 과정일까?

조선일보 조선닷컴

시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