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2.21 03:03 | 수정 : 2018.02.21 10:59

올림픽전부터 노선영·연맹 갈등… 실전서 동료탓 등 불화 '생중계'
국민들 "스포츠맨십 망각" 분노

"김보름·박지우 국가대표 박탈을" 청와대 청원 하루새 30만명 돌파

김보름 "결승선 들어오고 난 뒤 노선영 뒤처진 걸 알았다" 해명

지난 19일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팀추월 경기에서 한국팀은 8개 팀 중 7위로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이 경기에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결과 때문이 아니다. 결승선을 앞두고 김보름·박지우가 내달렸고, 노선영은 뒤처졌다. 김보름은 인터뷰에서 "3분 정도면 만족스러웠는데, 지우와 나는 (2분) 59초였다. 생각보다 기록이 잘 나왔는데…"라고 했다. "세 명 중 맨 마지막 주자의 기록으로 순위를 가리는 '팀추월'의 기본을 망각한 발언" "평화와 화합이라는 올림픽의 기본 가치가 실종됐다"는 비판이 거셌다. 하루 뒤 김보름은 백철기 감독과 기자회견장에 나왔다. 김보름은 "결승선에 들어오고 나서야 노선영이 뒤처진 걸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보름은 경기 후 노선영과는 만나지 않았다고 했다.

팀추월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팀워크가 가장 중요한 경기다. 우리 여자 팀추월 대표팀의 팀워크 붕괴는 예견된 일이었다. 노선영은 지난 1월 언론에 "팀추월 대표팀은 단 한 차례도 함께 훈련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빙상연맹과 대표팀 자체적으로 갈등을 해결하고 봉합하려는 시도는 사실상 없었다. 갈등은 최악의 형태로 올림픽 무대에서 실시간으로 표출됐다. 대중의 비판은 이 때문이다. "김보름·박지우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하라"는 청와대 게시판 청원에 하루 만에 30만명 넘게 동참했다. 이번 일은 '내부 문제 자체 해결 실패 → 외부로 표출 → 사회 문제화 → 집단적 보복 → 뒤늦은 수습'이라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갈등 증폭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팀 내 갈등 해결 능력·의지 없었다

노선영과 빙상연맹의 갈등은 지난달 연맹의 행정 착오로 노선영의 올림픽 출전이 무산된 직후 표면화됐다. 개인 종목 출전권을 못 딴 노선영이 팀추월에도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연맹이 뒤늦게 알았다. 노선영은 선수촌 퇴촌 통보라는 날벼락을 맞았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연맹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팀추월 여자 대표팀 파문
노선영은 뒤늦게 러시아 선수의 출전 불발로 1500m 출전권을 얻어 극적으로 대표팀에 복귀했지만 환대받진 못했다. 연맹 내부에선 "마시던 우물에 침을 뱉고 가더니 다시 돌아와 그 물을 마신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한 실업팀 지도자는 "연맹이나 코칭 스태프는 메달 가능성이 없더라도 체계적인 훈련을 시키고, 선수들이 다시 화합을 할 수 있게 다독여줘야 한다. 그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사이 갈등은 증폭됐다. 김보름은 매스스타트 종목 금메달 후보로 지도자의 지시에 따라 별도 훈련을 했다. 노선영이 자신을 마치 특혜를 누리는 선수처럼 표현한 데 대해 섭섭함을 느꼈다고 한다.

올림픽 경기 후에도 '팀워크'는 없었다. 노선영은 경기를 마친 뒤 주저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한 팀인 김보름과 박지우는 멀찌감치 서 있었다. 네덜란드 출신 보프 더용 대표팀 코치만이 노선영 곁에 남아 위로했다. 20일 기자회견 때도 노선영은 몸살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집단적 분노와 뒤늦은 사태 수습

경기 직후 온라인은 두 선수에 대한 분노로 들끓었다. 이들의 개인 소셜미디어에는 "올림픽 무대에서 '왕따 놀이'를 하다니 제정신인가" 등의 댓글이 쏟아졌다. "팀 내 갈등이 있었더라도 실전 경기에서만큼은 스포츠맨십을 발휘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자격 박탈과 적폐 빙상연맹의 엄중 처벌을 청원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 청원 참여자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30만명을 훌쩍 넘었다. 그간 올라온 청와대 국민 청원 중 가장 빠른 참여 속도였다.

김보름의 후원사에도 불똥이 튀었다.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는 '후원 중지 안 하면 불매운동 하겠다' 등 댓글이 1만개가 넘게 달렸다. 회사 측은 "김보름과 후원 계약은 이달 28일 종료된다. 계약 연장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적 갈등과 분노가 커질 대로 커진 후에야 대응하는 현상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 양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고강섭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문제가 외부에 알려지기 전에는 조직의 내부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노력과 시도가 부족하다. 결국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팀추월

스피드스케이팅의 세부 종목 중 하나로 3명이 팀을 이뤄 400m 트랙을 6바퀴(남자는 8바퀴) 돈다. 가장 마지막 선수가 결승선을 통과하는 기록으로 순위를 가린다. 공기저항의 부담을 나누기 위해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레이스를 한다. 혼자 뒤처지는 선수가 없도록 대형을 유지하는 팀워크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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