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2.27 03:03

['성폭력 발본색원' 발언 왜?]

靑·여당·진보진영 잇단 추문에 고강도 수사 지시로 적극 대응
김어준 '정치공작 이용' 발언 등 이념 문제로 튀는 것도 차단
탁현민 행정관 거취 다시 도마에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법조·문화·종교계 등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는 '미투(Me Too)' 운동에 대해 '발본색원' 등의 표현을 쓰며 사법 당국의 개입과 범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국내 미투 운동을 촉발한 서지현 검사 폭로 이후 지난 5일 검찰에 '엄정 처리'를 촉구했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그때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강도도 강했다.

문 대통령의 이날 지시는 미투 운동 확산이 진보 진영 내 논란으로 번지는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다. 미투 운동은 서지현 검사의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에 대한 폭로 이후 본격 시작됐지만, 최근 들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공교롭게도 문 대통령과 인연이 있거나 진보 진영에 속한 인사들이 주를 이뤘다.

여당(與黨)의 안이한 대응도 논란을 키웠다는 지적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서지현 검사 폭로에는 "검찰 개혁"을 거론하며 즉각 대응했다. 그런데 '대통령 직속 국가일자리위원회 청년분과위원장 손한민씨의 성희롱' '부산시당 여성 당원 성추행' 등 당내에서 잇따라 벌어진 성추문에는 무대응으로 일관하다 뒤늦게 윤리위 소집 등 조치를 취했다. '성추행 문제도 내로남불이냐'는 비판이 야권에 국한하지 않고 나왔다.

청와대 역시 미투 운동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난해 문 대통령의 미국 뉴욕 순방 당시 벌어졌던 청와대 직원의 성희롱 사건에 대해 야당은 '축소·은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여성 비하 논란이 일었던 탁현민 선임행정관 거취 문제도 야권을 중심으로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미투 운동은)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우리 정부의 성평등과 여성 인권에 대한 해결 의지를 믿는 국민의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라는 발언이 이날 나왔다. 문재인 정부가 성 문제에 대해 계속 한 발 떨어져 있을 경우 "방치한다"는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젠더(성) 폭력은 강자가 약자를 성적으로 억압하거나 약자를 상대로 쉽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회구조적 문제"라고도 했다.

야권에서는 "미투 운동의 대상이 여당·청와대 등으로 향하는 것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문 대통령이 대중에게 밝혀지지 않은 사건까지 '발본색원' 하라고 지시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실제 문 대통령이 엄정 수사를 지시한 이날 경찰은 '미투 폭로'로 지목된 19명을 포함한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지난주 친여 성향의 방송인 김어준씨가 '미투 운동이 문재인 정부 및 진보 인사들에 대한 정치 공작에 이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 것도 논란이 됐다. 민주당 금태섭 의원이 김씨 발언에 대해 "진보 인사는 성폭력 범죄를 저질러도 감춰줘야 한다는 말이냐"고 지적했다가 친문 지지자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금 의원은 이날도 페이스북에서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피해 사실을 공개하는데 왜 진보 진영의 분열·공작 가능성 등 정치 얘기를 꺼내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여론이 심상치 않자 당내에서도 "쓸데없는 논란은 자제해야 한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의 '성폭력 발본색원' 발언이 나온 이날에서야 민주당은 여성가족부와의 당정(黨政)협의와 당내 간담회를 갖고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당 젠더폭력대책 TF 간담회에서 "성폭력 문제야말로 가장 오랜 기간 가장 구조적으로 폭넓게 자리 잡은 적폐"라며 "관련 부처와 긴밀히 소통해 법적·제도적 지원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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