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설이 찾아왔다. 누군가 결혼한 여자들에게 설이란 즐겁고 신나는 명절이 아니라 행복 끝, 고생 시작의 정점이라는 말을 했다. 그 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깔깔대며 웃었다. 한참 웃었던 이유는 참으로 절묘한 표현이다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즐기며 하자는 게 생활 모토로 차례상도 즐기며 하자는 쪽이다. 즐기려면 제대로 즐기며 하는 게 옳다. 올해도 차례상 차리기는 즐기기의 연속이다.
처음 차례상이 내 손으로 넘어올 때, 나는 집안 식구들과 친척들이 모인 데서 선언했다. 나는 종교 문제로 제사를 안 지내는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이 집안도 제사를 지내는 집안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서 즐기자는 남편 뜻에 따라 차례를 지내기는 하겠다. 단, 조건이 있다. 내 지내는 방식에 대해 딴죽 걸 사람은 지금 해라. 그러면 나는 하지 않겠다. 나중에 차례 지내는 방법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전에 물러나겠다고 했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 뒤부터 우리 집에서 추석과 설날이면 차례를 지내기 시작했다. 어차피 만드는 음식이니 차례를 지내기로 합의 본 것이다. 차례(茶禮)란 말 그대로 차를 한잔 올리는 약식 제사다. 그게 요즘은 상다리 부러지도록 음식 장만해서 올리는 것으로 바뀌어 여자들의 원망을 사게 된 것이다. 원래대로 차례(茶禮)로 돌아가면 아마도 우리나라 여자들이 대찬성할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참 딱하다.
어찌 되었건 우리 집은 기본 차례상에 내가 올리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올린다. 초창기에는 주로 돌아가신 분이 좋아하던 음식이나 과일이 올라갔다. 어머님이 좋아하시던 모나카도 올라가고 아버님이 좋아하시던 양갱도 올라갔다. 잡채가 올라가고 불고기가 올라갔다. 북어나 밤 대추 등은 세월이 갈수록 퇴출이 되고, 딸기가 올라가고 귤이 올라갔다. 과일 수입이 늘어나면서 시부모님도 드셔 보시라고 망고도 올라가고 체리도 LA갈비찜도 올라갔다.
올해는 다른 한 음식을 추가하기로 했다. 인삼 튀김이다. 언젠가 인삼의 고장인 금산에 갔다가 그곳의 명물이 된 인삼 튀김을 먹었다. 통통한 수삼에 튀김옷을 입혀서 고소하게 튀겨낸 맛에 푹 빠졌다. 바삭바삭하며 고급스러운 맛이 일품이었다. 식감 또한 좋았다. 인삼을 튀기니 사포닌 성분 때문에 강하게 느껴지던 쓴맛은 사라지고, 달콤한 맛은 배가 되었다.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인삼 튀김을 시부모님 차례상에 올리고 싶었다.
경동 시장에 가서 수삼을 사 왔다. 사 오자마자 본격적으로 인삼 튀김을 하기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인삼 튀김 만들기
1. 인삼 잔뿌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솔로 살살 문지르며 깨끗이 씻어 준다.
2. 기름을 적게 사용하기 위해 머리를 자르고 세로로 반을 잘라 준다.
3. 자른 인삼에 튀김옷을 얇게 입힌다.
4. 바삭함을 더 하기 위해 얼음물에 튀김가루를 풀어 묽은 반죽을 만든다.
5. 기름이 뜨거워지면 튀김옷을 입힌 인삼을 얼음물 반죽에 한 번 담갔다가 튀긴다.
6. 그냥 먹어도 좋지만, 조청이나 꿀에 찍어 먹어도 좋다.
차례상에 올릴 것을 따로 담아놓고 식구들이 둘러앉아 인삼튀김 맛에 푹 빠져들었다. 다들 ‘어쩜 인삼이 이렇게 바뀌냐?’고 신기해한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호불호(好不好)가 있는 법이다. 음식이라도 다르지 않다. 내게 가장 중요한 손님인 9살 손자가 한번 먹어보더니 고개를 가로젓는다. 안 먹겠다고 저만치 물러나 앉는다. 망고를 달란다. 하긴 그 나이면 단것을 가장 좋아할 나이다. 속상하지만 손자에게 망고를 건넨다. 속으로는 ‘너도 머지않아 이 인삼 튀김 맛에 푹 빠질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