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2.28 02:10

[오늘의 세상]
北 대표단, 일정 마치고 돌아가비핵화 관련 어떤 언급도 없어

통일부 차관 등 같은 호텔 투숙, 남북 심야 회동 이뤄졌을 가능성
"北, 남북관계 복원만 강조"
주한 美사령관 "金, 섬 같았다… 평창서 中 부총리와도 대화 안해"

27일 오전 11시 51분쯤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은 출경하면서 취재진을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러나 "방남 결과는 만족스럽나" "북·미 대화 언제쯤 생각하나" "미국과 대화는 조건이 있나" 등 쏟아지는 질문에는 입을 다물었다.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 참석을 위해 북한 대표단을 이끌고 내려온 김영철은 2박3일간 우리 당국자들과 다섯 차례 공식 접촉을 했지만 육성은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다. 사진·영상도 없었다. '천안함 폭침 주범'인 김영철을 환대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심야 비공식 접촉도 이뤄진 듯

김영철 일행은 방한 마지막 날인 이날 오전 9시부터 한 시간가량 조명균 통일부 장관, 서훈 국정원장과 조찬을 같이했다. 식사는 통일부가 현장 상황실을 꾸린 호텔 16층 라운지에서 이뤄졌다. 통일부는 "남과 북은 남북 관계 개선 및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고만 밝히고 구체적인 발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번에 김영철이 우리 정부 인사들을 만난 횟수는 공식적인 것만 서 원장과 천해성 통일부 차관이 3회, 조 장관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회, 남관표 국가안보실 2차장과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1회 등이다. 야간에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는 비공식 접촉도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천해성 차관은 전날 워커힐호텔에 투숙했다. 하지만 합의서나 공동 보도문 같은 결과물은 없었고, 우리 정부는 구체적 대화 내용에 대해 함구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양측이 민감한 주제를 다뤘고, 핵심 문제들에 대해 이견이 충분히 좁혀지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했다.

 

정부 소식통들에 따르면 다양한 접촉 계기에 우리 측은 '미국과의 비핵화 대화에 나서 달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던졌지만 김영철은 주로 남북 관계 개선의 시급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김영철은 미국 얘기가 나올 때마다 "북남 관계는 어디까지나 우리 민족 내부의 문제"라며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북남 관계를 개선하자" "북과 남 사이의 접촉과 왕래, 협력과 교류를 폭넓게 실현하자" "북남 수뇌 회담이 열려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통일대교 시위 피해 역주행

이날 조찬을 마친 김영철 일행은 오전 10시 30분 호텔을 나섰다. 올림픽 폐회식 참석을 마치고 지난 25일 자정 무렵 호텔에 돌아온 지 34시간 만의 외출이었다. 김영철 일행을 태운 차량 행렬은 도라산 CIQ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의 기습 시위에 막혀 통일대교 진입이 어려워지자 하행선으로 이용하는 일방통행로를 1㎞가량 역주행해 통일대교로 진입했다. 김영철 일행은 지난 25일 입경 당시에도 통일대교가 시위대에 막히자 군용 교량인 '전진교'로 우회했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들어올 땐 개구멍, 나갈 땐 역주행"이라고 했다.

한편 빈센트 브룩스 주한 미군 사령관은 평창올림픽 폐회식 때 무뚝뚝한 표정으로 VIP석에 앉아 있던 김영철에 대해 "고립된 섬과 같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룩스 사령관은 폐회식 당시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을 사이에 두고 김영철과 나란히 앉았었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브룩스 사령관은 폐회식 참석 후 주한 미군 수뇌부에 "김영철은 바로 앞에 앉은 중국 인사(류옌둥 중국 부총리)와도 대화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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