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세상살이에 필요한 조건은 지식이라고 한다. 물론 지식보다 우선 하는 것이 지혜이며, 이보다 우선 하는 것이 상식이고, 또 이보다 우선 하는 것이 있다면 눈치일지도 모른다. 생존 본능에 불과하다. 자유 선택이긴 하지만 가장 평범해지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물론 가장 어렵겠지만….)을 점점 찾게 된다. 이것이 곧 행복을 찾는 길이라고도 한다. 참 오래된 이야기다.
어느 순간이든 뒤돌아보면 나만의 희망 사항(그것이 지식이나 지혜든 또 상식이나 눈치든 간에)을 움켜쥐려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때그때 기쁨 같은 것을 느끼다가, 슬픔 같은 것을 느끼다가, 그 나머지 몽땅 뭉뚱그려 이도 저도 아닌, 나만의 소리라며 만들고 있던 것이다. 서로 펼치고 보면 별 것 아닌데도 말이다.
그랬다. 나만의 소리, 내가 만드는 소리란, 아마 누가 들어도 그냥 지나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엉뚱하게라도 앞에 무엇을 세워놓고, 너는 무엇이냐며, 보다가 가다가 섰다가 또 움직거렸다. 뉘라서 보든지 말든지, 뭐 뉘 볼세라, 아니, 날 보고 우습다 할세라, 몰래 나를 스스로 만지며 소리를 낼 수밖에 또한 없는 것을.
이링공뎌링공 밥 먹다 보면, 세월이 흐르고, 아픈 곳이 점점 더 생겨나고, 돈 벌이도 뭐 재미없어지고. 옆 사람도, 만났던 사람도, 또 아는 사람도 둘셋 떠난다. 그래도 ‘무엇인가는 내 것이다’라며 꽁꽁 움켜쥐는 나날이다. 얼굴 심술 주름 죽죽 만지작거리고 있는 요즈음이다. 지식만으로 눈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살아가는 일이 더 좋은 것이다.
가끔, 밥숟가락을 들고 멍청해질 때가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아니 한때 그 무엇을 가지려 했던 나 자신이 못마땅하여 구석에 가두고 싶을 때다. 과연 알고 있는 것들, 내 팔 안에, 내 그늘 안에 있는 것들이 나를 존재시키는 모두일까? 어쩌면, 이러한 것들을 존속시키기 위해 밥 먹고 숨 쉬는 것은 아닐까? 답을 하는 순간, 불확정성이 꼬리를 문다. 이러한 것들이 계속 밥숟가락에 얹히는 것이었다. 당연한 본능이다.
이래저래 또 가끔, 문득 세상만사 귀찮아 괜한 산책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걷다가 어쩌다 구름이라도 볼라치면, 지식으로 지혜로 상식으로 눈치로 사는 일이 이제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그래서 그것들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는, 또 만들어져 있던 것을 가지고 다시 또 다른 무엇인가를 만드는, 뭐 이런 일 등등이 이제는 마지막이길 소원해 보는 것이었다.
분명 그럴지도 모른다. 진정 내 멋진 소리란 내 안에서 내가 사라져 느끼지 못하는 것 아닐까 하여 고개를 쳐들어 하늘을 보기도 한다. 다시 아기처럼, 보이는 대로 그냥 받아들이고 섞어버리다가 그 순간 잊어야 하는 일인 듯도 하다. 욕심일까? 그저, 내가 알지 못하는 사소한 것에 고개 숙여보려 하는데, 이 순간, 내 소리가 엇박자로 바뀌길 바라보는데, 하, 꼭 한 번, 시원하게 내 안에서 달라진 내가 웃기를 바라보는데, 잘 안 된다. 평범하게 살기엔? 허, 난 참 눈치도 없는 욕심꾸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