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가해자 조사 절차 없이 사과 요구하는 건 인권침해" 메일에 학생들 "미투 못하게 하나" 반발
"무고 막을 최소한의 장치 필요" "성폭력 막기 위해 부작용 불가피" 성범죄 전문가들도 의견 엇갈려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거세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을 뿌리 뽑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피해 여성을 비하하는 '2차 폭력', 가해자 가족에 대한 사실상의 '연좌제', 반론의 기회도 없이 '폭로=사실'로 받아들이는 현상들이다. 특히 일부 폭로가 허위사실로 판명되면, '미투 운동' 전체의 동력이 떨어지고 순수성이 의심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2일 연세대 인권센터는 재학생들에게 이메일을 발송했다. '수업 중 차별 발언이 근절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용이다. 말미에 '다만 학생들의 문제 제기의 형식들이 혹시 또 다른 인권침해가 되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더 생각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정확한 조사 절차 없이 대중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에 대한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고 했다.
여성의 날 앞두고 "미투, 위드유" - 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제34회 한국여성대회’참가자들이‘Me Too(나도 당했다)’‘With You(당신과 함께하겠다)’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대회는 오는 8일 세계여성의날을 앞두고 한국여성단체연합 주최로 열렸다. /고운호 기자
학내에선 이 메일을 두고 '미투 운동을 자제하라는 의미냐'는 비판이 나왔다. 연세대 온라인 커뮤니티엔 "저런 말은 고발하려던 피해자들에게 협박으로 느껴질 것"이라는 반응이 올라왔다. 연세대 철학과 성희롱사건 대책위원회(대책위)는 "공개 사과를 예로 든 건 우리를 겨냥한 것 같다"고 했다. 대책위는 지난해 12월 학내에 철학과 김모 교수가 여학생들을 지속적으로 성희롱해 왔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다.
메일 내용에 공감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여론재판 방식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시비비를 따져서 당사자들이 서로 사과하고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방향이 맞는다' '학내에 인권센터 등 신고 채널이 다양해 (정식 절차를 거쳐) 충분히 처리 가능하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방연상 센터장(신학과 교수)은 "(해당 이메일은) 미투 운동을 염두에 두고 보낸 것이 아니다"고 했다. 다만 그는 "미투 운동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지만, 한번 (가해자로) 이름이 거론되면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도) 타격이 크다. 그런 부분을 조심하고 사실관계를 정확히 따질 필요는 있다"고 했다.
앞서 동국대에서는 익명 커뮤니티 '대나무숲 페이지' 관리자가 미투 관련 글들을 걸러내 논란이 일었다. 이후 '가계정으로는 미투 운동 관련 제보를 할 수 없다. 근거 없는 제보가 난무할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근거를 보장하기 위함이다'라고 공지했다. 가계정은 관리자 쪽에서도 제보자의 신원을 파악할 수 없다. 동국대 총여학생회는 "유독 미투 운동에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고 비판했다.
'미투 운동'으로 억울한 사람이 나올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반론하기도 전에 기정사실이 되어 퍼져 나가기 때문이다. 지난 2일에는 성추행 의혹을 받던 전북 지역의 한 사립대 박모 교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가 가족에 의해 구조됐다. 그는 '억울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작성했다.
무고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지적에 "또 다른 인권침해" "불가피한 부작용"이라는 의견이 엇갈린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음해 목적으로 미투 운동을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방법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신진희 변호사는 "무고나 사회적 낙인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것은 안다. 그러나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 신원 공개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익명 폭로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는 피해자들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