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해운 구조조정, 결과는 알짜 항로 반토막

정부의 구조조정으로 국내 1위, 세계 7위의 한진해운은 작년 2월 파산선고를 받았다. 정부는 당시 세계 15위인 현대상선을 지원해 '해운강국'을 재건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현대상선은 지난해 4000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냈다. 한국 해운이 강세를 보였던 북미 항로 점유율은 반 토막이 났다. 글로벌 해운사들이 합종연횡을 통해 몸집 불리기를 하면서 현대상선의 앞날은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구조조정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해운업 구조조정이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제때에 과감한 구조조정을 하지 못하면 해당 산업과 경제 전반에 장기적인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한국 해운, 북미 노선 점유율 반 토막

4일 글로벌 해운조사기관 피어스에 따르면 작년 현대상선의 북미항로 점유율은 5.47%다. 한진해운이 생존해 있던 2015년 우리나라 북미항로 점유율은 한진해운(7.4%), 현대상선(4.5%)을 합해 11.9%였다. 한진해운과 함께 사라진 북미항로 점유율 7.4% 가운데 현대상선이 가져간 건 1%포인트에 불과했다. 한국 해운업의 북미항로 점유율은 절반으로 줄었다.

한진해운의 북미항로는 대부분 글로벌 대형 해운사 몫이 됐다. 프랑스의 CMA CGM은 지난해 물동량이 232만TEU로 2016년(116만TEU)보다 배가 늘었다. 현대상선 물량 증가분(17만TEU)의 7배가 늘었다. 중국 코스코도 5.7%, 머스크라인도 물량이 5.3%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 파산으로 한국 해운에 대한 화주들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한국 해운사가 한진해운 물량을 흡수할 것이라는) 우리 정부의 기대와 달리 화주들은 외국 해운사를 선택했다"고 했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운임수입과 일자리도 크게 감소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지난해 9월 보고서에서 한진해운 파산 이후 단기적으로 한국 해운이 벌어들이는 운임수입 3조원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일자리 상실도 1만명 수준이다. KMI는 "한진해운 구조조정 당시 정부는 한국경제와 산업구조 관점의 구조조정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며 "한진해운 파산과 함께 우리나라 해운산업의 발전 역량이 후퇴됐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해운사들 몸집 키우는데…

현대상선의 부활도 장담하기 어렵다. 글로벌 해운사들은 '합종연횡'을 통해 몸집 키우기를 마무리하고 운임 경쟁에 나선 상황이다. 일본 해운 3사(NYK, MOL, K라인)의 컨테이너 사업은 오는 4월부터 통합 회사인 오션네트워크익스프레스(ONE)에 이행된다. 선복량 기준으로 세계 6위에 올라선다. 중국 국유 해운사였던 차이나시핑을 합병해 4위에 오른 중국 해운사 코스코는 올해 홍콩 해운사 OOCL과 합병을 완료하면 세계 3위가 된다. 세계 1위인 머스크는 함부르크쥐드(독일), 세계 3위 CMA CGM(프랑스)은 싱가포르의 NOL을 각각 인수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인수 합병(M&A)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운임을 낮춰 경쟁사를 고사(枯死) 시키려는 글로벌 해운업계의 '치킨게임'은 여전히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현대상선도 선복량 확대에 나서고 있다. 현재 전 세계 1.5%인 선복량을 2021년까지 5%로 늘리겠다는 목표도 내놨다. 목표대로 진행된다면 세계 14위에서 5위로 뛰어오른다. 이를 위해 가장 큰 컨테이너선인 2만2000TEU급 38척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금 여력도 없다. 현대상선은 작년 4068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2016년의 약 절반으로 준 것이다. 해운분석기관인 드루어리는 지난달 25일 펴낸 보고서에서 "(현대상선의) 무리한 확장 계획은 비즈니스 붕괴 우려를 더욱 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종길 성결대 동북아물류학과 교수는 "구조조정 당시는 2~3년 지나면 해운 시황이 나아질 것이라고는 했지만,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며 "한국 정부가 대형 정기선사를 파산시켰다는 화주들의 기억은 한국 해운업에 두고두고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 기업 산적한데

'한국GM, 금호타이어, 성동조선해양, STX조선해양…'. 오는 6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정부의 구조조정 수술대 위에 놓인 기업들이다. 경남 통영과 진해에 있는 중견 조선사인 성동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은 연명(延命)이냐, 퇴출이냐 갈림길에 섰다. 2010년부터 채권단 자율협약에 들어간 성동조선은 지난 11월부터 건조할 선박이 없어 근로자 모두 일손을 놓은 상태다.

법정관리에서 졸업한 STX조선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최근 수년간 3조원 가까운 적자를 낸 한국GM은 군산공장 폐쇄와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금호타이어는 해외 매각이 재추진되고 있다. 성동조선이나 STX조선 처리 방안 결정은 자꾸 미뤄지고 있다. 한국GM에 대해서는 산업은행이 곧 실사에 들어갈 예정이고, 금호타이어는 노조위원장이 해외 매각을 반대하며 고공 농성에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기업 구조조정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여서 해법을 찾기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실패한 해운업 구조조정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산업 재배치가 돼야 경제에 생기가 생기고 고용이 늘 수 있는 기반이 생길 수 있는데 IMF 이후 20년간 실질적인 구조조정은 손을 놨다"며 "구조조정은 정해진 방향과 원칙대로 실행만 하면 되는데 누구도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