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벌판을 연상시키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어느새 봄에 자리를 물려주었다. 거리에서는 밝은색 외투가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 햇살의 입자가 전달하는 느낌도 변화한다.
시리도록 투명한 하늘도 너무 추워 바라보기 싫었던 지난 계절이었지만 그 겨울 속에 자리하고 있는 그림 한 점이 있다. 겨울은 화가들의 화폭에 헤아리지 못할 만큼의 모습을 드러내지만 평생 단 한 점의 겨울을 그리면서 진정 겨울다운 겨울을 그렸다고 평가되는 작품이다. 19세기 스페인 궁정 수석화가 고야의 작품 “겨울”이다.
스페인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면서 엘 그레코, 벨라스케스에 이어 스페인이 자랑하는 위대한 화가 중 고야는 기억 속에 매우 강렬한 느낌을 지니고 잊히지 않는 사랑의 느낌처럼 머물러 있다. 세 명의 국왕과 스페인의 운명을 지켜보면서 역사의 고통을 화폭에 담았던 고야는 어떤 인간도 역사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듯한 삶의 궤적을 지닌 화가였다.
자신의 그림에 대한 재능을 자부하던 고야는 그 당시 화가들에게 성공의 지름길이었던 왕실 화가가 되기 위하여 미술아카데미 회원인 고향친구 바예우의 도움을 받고자 그의 여동생 호세파와 결혼을 한다. 이후 고야는 처남 바예우의 추천으로 궁정의 벽걸이 양탄자(태피스트리) 밑그림인 카르톤을 그리게 된다. 황태자 부부의 양탄자 주문을 받은 고야는 당시 스페인 젊은이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젊음이 지닌 열정과 무모함은 항상 지속하는지 스페인에도 그 당시 오렌지족을 표현하는 마호(남자)와 마하(여자)가 있었고, 도시 멋쟁이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페티메트레(남자)와 페티메트라(여자)가 있었다.
마호는 시가가 그들의 대명사로 어디에서나 시가를 입에 물고 있어 코끝이 거의 석탄재로 그린 듯 꺼먼 칠들을 하고 검은 망토를 걸치고 있는 그들은 못 말리는 천방지축들이었다. 그들을 멀리서 보게 되면 일반인들은 이들을 피해갈 정도로 기피의 대상이었다 한다.
반면, 비슷한 이름의 마하는 매우 건강한 정신세계를 가진 억척스러운 생활력을 자랑한다. 과일을 따는 바구니를 옆에 끼고 있으면서도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조차도 의식하지 않는 건강한 모습의 젊은 여성들로 이들을 오렌지 아가씨 마하라 불렀다.
이들과는 정반대로 도시 멋쟁이들을 페티메트레와 페티메르라로 불렀다. 하얗고 창백한 피부를 자랑하는 이들은 마드리드에서 멋쟁이 소리를 들으려면 하루에 세 번씩 옷을 갈아입어야 하고 프랑스 유행에 뒤지지 않아야 했다. 이들이 선호하는 의상은 프랑스에서 수입한 것들로 사치로 인해 궁핍해지면 아침 식사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아끼던 속옷이나 의상들을 눈물을 머금고 식당이나 전당포에 맡기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한다.
고야는 귀족이 아닌 이들의 모습을 카르톤의 소재로 선택하였다. 양탄자 그림을 본 에스파냐 국왕 부처는 놀라서 감탄을 연발한다. 당시 어떤 화가도 위엄 있는 궁궐 벽면을 장식할 그림에 대담하고 당돌한 표현으로 마호나 마하를 그려 넣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고흐의 그림도 좋았으나 그 두둑한 배짱이 마음에 든 국왕 부처는 즉석에서 침실에 걸릴 양탄자 데생을 주문하였다.
직접 보고 싶다는 전갈을 받은 고야는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위하여 국왕 침실을 장식할 태피스트리 밑그림의 소재로 사계절을 선택한다. 인류가 시작된 후 지속해서 이어지는 계절의 변화지만, 고야는 자연만 그려 넣은 것이 아니다. 계절의 변화를 소재로 자연과 닮은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미술의 역사만큼 오래되고 친근한 소재가 독특하고 독창적인 고야의 화폭에서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탄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