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끈한 건 재미없어… 거칠고 낡은 게 새롭다

지직거리는 소리가 흡사 먼지 낀 유리창 같다. 서로 다른 소리층이 구성한 독특한 사운드 질감이 정제되고 명료한 소리보다 어쩐지 푸근하다. '로파이(Lo－Fi)'는 원음에 충실한 하이파이(Hi－Fi)의 반대말.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저음질 사운드를 일부러 만들어내는 음악을 뜻한다. 스마트폰으로 DSLR 수준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일부러 흐릿하게 찍히는 필터를 쓰는 것도 로파이의 유행이다.

새소년, 신해경, 신세하 등 대중음악계에서 주목받는 신예들은 물론 딘, 크러시 등 K팝 가수들 곡에서도 전파가 잘 잡히지 않는 라디오의 지직거림을 연상케 하는 사운드를 쉽게 들을 수 있다. 하이파이 주류 음악에 싫증난 일종의 반작용으로 여겼던 이 사운드는 로파이 힙합, 로파이 포크 식으로 여러 장르로 퍼져가는 중이다.

로파이의 유행은 모든 것이 디지털화한 시대에 오히려 환영받는 아날로그 감성의 유행과 맞물려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을 접한 2030세대에겐 LP 음반과 흑백사진이 더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인스타그램과 각종 사진앱에서는 일부러 낡은 필름카메라로 찍은 듯한 효과를 내주는 로파이 필터가 인기다. 유통기한 지난 필름을 파는 인터넷 사이트도 속속 등장 중이다. 더 이상 제작되지 않는 '한정판' 딱지가 붙으며 자주 품절 사태를 빚는다. LP는 물론 카세트테이프를 찾는 수요도 늘고 있다. 작년 국내 LP 판매량은 전년보다 15％ 이상 늘어났다.

유튜브에서는 로파이곡이 공부 집중력을 높이고 수면에도 도움을 준다는 이유로 인기다. 아이돌 노래를 로파이 음질로 편집해 올리는 유튜브 채널이 수백 개에 이른다. 아예 로파이 음악만 모아 들려주는 음악앱들도 등장해 많게는 5만 건 이상 다운로드되고 있다.

로파이 사운드는 스피커의 지직거림, LP가 바늘에 긁히는 듯한 소리를 재현하거나 아예 멀쩡히 녹음된 소리를 뭉개는 장비로 만든다. 장비의 모든 노이즈를 제거한 하이파이 사운드와 달리 로파이의 의도한 소음은 일일이 베끼기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차별성을 갖는다. 팝가수 브루노 마스는 최신 앨범 '24K Magic'에서 1980년대와 90년대 흑인 음악에서 주로 쓰인 올드스쿨 비트를 새로 해석해 사용하기도 했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씨는 "로파이는 단순히 과거에 대한 향수나 낡은 것을 소생시킨 것이 아니다"라며 "디지털음악이 유통된 지 20년가량 되면서 젊은 세대가 날것의 소리를 색다르고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래된 것이 가장 새로운 것이 되는' 대중문화 속성이 로파이 유행에도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