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유럽미술은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거쳐 낭만주의의 로코코 이후 그간의 미술사조에 반발하는 고전주의 시대가 시작된다.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화풍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던 이 시기에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과 그림을 읽어내는 사람 사이에 암묵적인 약속이 있었다. 숨은 뜻을 그림에 표시하여 서로가 지닌 의미를 전달하는 방법으로 고대 미술이 시작되던 그리스와 로마 시대부터 사용되어온 그들 나름의 전통이었다.
가령, 봄은 생명의 시작을 의미하는 꽃이나 어린 동물로, 여름과 태양의 상징은 밀짚 가리나 낫, 횃불이었다. 가을은 잘 익은 과일로 포도송이나 포도원을 그려 수확을 의미를 담고, 겨울은 죽은 날짐승이나 장작불로 표현했다.
성서나 신화 속 신과 영웅에게도 사계절을 표현하기 위하여 나름의 논리로 계절의 의미와 역할을 부여했다. 꽃과 정원의 여신은 플로라, 계절의 여왕인 봄의 여신은 베누스, 태양신 헬리오스와 곡물의 신 케레스 등이다. 아폴론은 여름의 신이 되었다. 다재다능한 신인 아폴론은 인간에게 축복을 내리기도 하지만 풍작이 되기도 하고 흉작이 되기도 하는 기후의 변화를 일으킨 신이다. 아폴론은 변덕스러운 성격과 연관이 지어져 비와 바람이 동반되는 여름이 되었다.
고야의 사계 중 봄날의 주인공은 처녀의 자태로 표현이 되었다. 장미향 가득한 꽃다발을 허리에 꽃은 여신 플로라가 귀여운 꼬마 숙녀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자연의 생리로 나타나는 계절의 순환과정에서 봄을 아름다운 처녀의 자태로 표현했던 고야는 겨울도 인간과 자연의 모습으로 담아냈다.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 들판 위에 눈발이 바람을 따라 어지럽게 춤을 춘다. 그 바람 속을 한 무리의 남자들이 걸어가는데, 바람은 그들의 뒤를 따라오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바람을 맞으며 앞으로 가고 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자락에서 바람의 방향이 보인다. 그들이 걸어가는 길 위에 서 있는 나뭇가지의 휘어짐과 그들이 입고 있는 망토로 바람의 방향이 더 세차게 강조가 된다.
바람을 강조하는 세 마리 짐승의 모습이 세차게 추운 날씨임을 알 수 있다. 나귀의 등에 얹힌 죽은 돼지도 겨울의 상징이다. 보관시설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 여름은 고기가 쉽게 부패하여 추운 겨울이 되어야 가축을 잡았기 때문이다. 나귀의 귀가 바람의 방향을 보이고, 다리 사이로 감추어진 개의 꼬리로 매서운 추위를 그려낸다.
다른 화가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겨울을 그려낸 고야는 자신의 나라가 처한 운명에 희망을 부여하고 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풍경 사이로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산등성이의 기묘한 고요 속에 바람을 헤치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무거운 발걸음이 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며 가슴까지 찌르는 것 같은 혹독한 겨울로 당시 스페인을 그려내었다.
그러나 겨울에는 추위만 담은 것이 아닌 또 다른 의미를 그려놓았다. 춥고 혹독한 바람을 헤치고 도달하는 어느 지점에는 나귀 등에 얹힌 돼지고기를 즐길 수 있는 기다림의 시간을 담아 놓았다. 춥고 아득한 눈발을 체치고 도착하는 곳에서 맞이하는 즐거움으로 현재의 고통을 환기해 줄 희망의 시간을 암시한다.
청력을 잃은 후 귀머거리의 집에서 14점의 연작으로 그렸던 검은 그림들에도, 나폴레옹 전쟁의 참상을 담았던 1808년 5월 3일에도, 고야는 마주하고 있는 고통과 참혹한 현실 뒤에 다가올 희망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다가온 신체적인 절망을 스페인이 마주하고 있는 역사적 현실과 동일선으로 대하였을지도 모른다. 고통의 시간에서도 그림을 통해 자신과 마찬가지로 조국 스페인이 마주한 운명에 희망의 메시지를 그림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또한, 고야는 현재의 시간을 담는 화폭에 다가올 미래까지 함께 담아낸 화가였다. 어느 순간은 권력에 의한 출세를 꾀하기도 하였으나 정의를 믿는 화가였다. 말이나 비판이 아닌 붓과 그림으로 진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내는 대담함과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인간을 그렸던 화가 고야는 역사의 진실을 붓으로 그리면서 인간을 통하여 희망을 부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특별한 감성의 내면을 지닌 고야의 겨울은 꽤 오랜 시간 내 기억에 자리하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