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3.09 00:42

[통영 성동조선 르포]
어영부영 구조조정에 지역경제 휘청… "혹시나" 했던 직원들 동요

- 한때 직원 9000여명 성동조선
지금은 1245명 수준으로 감소… 4년간 통영 일자리 1만개 사라져
84곳 협력업체 이젠 단 하나 남아

- 빈집 된 원룸, 문닫는 가게들
조선소 인근 원룸 80%가 텅텅…
돈 쓸어갈 정도로 장사 잘됐는데 가게 곳곳이 손님 끊겨 월세 못내

8일 성동조선해양이 있는 경남 통영 안정공단 인근의 상가 거리. 불 꺼진 식당 입구마다 '임대'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식당 바깥에 붙어 있는 음식 사진은 찢어지거나 색이 바래 있었다. 식당 주인 김모(72)씨는 "식당과 노래방, 호프집 등 20개가 넘는 가게 중 5곳 정도만 빼고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이곳은 2003년 성동조선이 만들어지면서 생겨난 상권이다. 성동조선이 한창 성장할 때만 해도 '성동'이 붙어 있는 가게가 수두룩했다. "돈을 쓸어간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가 법정관리 방침을 공식 발표한 이날,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조선소 인근 상가 상당수 문 닫아

월세를 못 내는 곳도 속출하고 있었다. 한 호프집 사장은 "조선소와 협력업체만 보고 장사했는데, 이미 작년 9월부터 월세도 못 내고 있다"며 "조선소가 아예 문을 닫으면 가게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인근 김밥집은 지난해 6월 장사를 접고 나갔지만, 건물주로부터 보증금을 아직 돌려받지 못했다. 은행 지점도 지난해 문을 닫았다.

 

정부가 성동조선해양의 법정관리 방침을 공식 발표한 8일 오후 경남 통영시 성동조선해양 앞은 인적이 뚝 끊겨 적막감이 감돌았다. 성동조선해양에 의존하던 통영과 고성 지역 경제는 근로자들이 빠져나가고 상가 철시가 이어지며 휘청거리고 있다.
정부가 성동조선해양의 법정관리 방침을 공식 발표한 8일 오후 경남 통영시 성동조선해양 앞은 인적이 뚝 끊겨 적막감이 감돌았다. 성동조선해양에 의존하던 통영과 고성 지역 경제는 근로자들이 빠져나가고 상가 철시가 이어지며 휘청거리고 있다. /김동환 기자

협력업체 직원들이 주로 살던 인근 원룸촌도 썰렁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협력업체가 하나둘씩 빠져나가 지금은 대부분 원룸이 공실률 80%를 넘는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원룸 주인은 "10억원에 가까운 투자금 대부분을 날릴 판"이라고 말했다.

통영 시내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통영 시내에서 고깃집을 하는 류모(40)씨는 "몇 년 전엔 조선소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최소 세 팀은 왔는데, 지금은 한 달에 한 팀이 올까 말까"라고 말했다.

◇통영·고성 경제에서 비중 절대적

성동조선 직원은 대부분 통영시와 고성군에 산다. 문제는 통영과 고성에 성동조선을 제외하면 큰 기업이 없다는 점이다. 성동조선은 2010년 협력업체를 포함해 직원 수가 9000명에 달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수가 1245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나마 이 중 1000명은 지난해부터 유급휴직 중이다.

성동조선이 어려워지면서 지역 경제는 급속하게 얼어붙었다. 2014년 상반기 7만300명까지 올라갔던 통영시의 취업자수는 이후 꾸준히 떨어져 지난해 하반기엔 6만1800명까지 줄었다. 4년 만에 1만개에 가까운 일자리가 사라진 것이다. 통영시 관계자는 "통영시 고용과 세수의 대부분을 성동조선에 의지하고 있는데, 성동조선의 침체가 지역 경제에도 곧바로 악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2010년 84곳에 달하던 성동조선의 협력업체는 지난해 말 1곳까지 줄었다.

통영 부동산 가격도 하락 추세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통영의 아파트 가격은 2016년 9월 이후 줄곧 내림세다.

조선소 인근에서 만난 김모(34)씨는 "작년 2월 다니던 협력업체가 문을 닫았는데, 살고 있는 아파트 전세 가격이 6000만원이나 떨어져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며 "더 이상 별다른 일거리도 없는데 다른 곳으로 이사도 못 가고 있다"고 했다.

이용남 통영상공회의소 사무국장은 “통영에 수산업과 관광업이 있다고는 하지만 조선업의 비중이 절대적”이라며 “통영 입장에선 조선업이 사라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선기자재 업체를 운영하는 이상석(60)씨는 “이미 몇 년 동안 수많은 조선 기자재 업체들이 도산했는데, 성동조선까지 문을 닫으면 조선 기자재 산업은 사실상 없어지다시피 할 것”이라고 했다.

◇직원들 “앞으로 어떡할지 막막”

조선소 안도 선박 건조로 활기찼던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메인 작업장인 2야드는 지난해 11월 건조를 마지막으로 작업이 중단돼 텅 비어 있었고, 1야드는 아예 폐쇄됐다. 수주한 선박이 아직 5척 있지만, 채권단이 2차 외부컨설팅을 진행하면서 선사 측이 유보를 요청해 건조 일정이 미뤄진 상태다.

직원들도 동요하고 있다. 조선소 인근에서 만난 한 직원은 “법정관리 얘기가 나와도 ‘그래도 혹시나’ 생각했는데 참담하다”고 했다. 한 직원은 이날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운영하는 구인·구직 사이트인 ‘워크넷’에 접속했다. 이 직원은 “예전 같으면 다른 조선소로라도 이직했을 텐데, 지금은 조선업 전체가 침체된 상태라 그마저도 어려울 것 같다”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솔직히 막막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구조조정 지연으로 회사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면서 근로자 모두가 일자리를 잃게 됐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