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3.12 11:01

어느 TV 채널에서 본 내용이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퇴근 후 집에 와서 TV를 시청하려고 리모컨을 찾았다. 그러나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한참을 찾다가 체념 후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곳에 그렇게 애타게 찾던 리모컨이 떡 버티고 있었다. 이유인즉 전날 밤 그 남자가 TV를 시청하다가 전화를 하면서 목이 말라 냉장고 문을 열어 물병을 끄집어내어 물을 마신 후 통화가 끝나면서 TV 리모컨도 같이 넣은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TV에서 시청자를 웃기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일 뿐이고, 한편으로 생각하면 기억력 감퇴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을 50대 이후 중‧장년층에게 물어본다면 그냥 웃어넘길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반백 년 이상 살아온 이들에게 이것은 결코 가벼운 일상이 아니다. 바로 치매라는 병의 전조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워낙 의술이 발달하여 암이라도 말기 암이 아닌 초기 암이라면 거의 치료가 가능하나, 이 치매라는 병은 아직도 치료할 수 없는 무서운 병이다. 이 병은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 가족에게도 깊은 마음의 상처를 준다.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는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그 가족에게 해를 입히는 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매 환자는 결국 가족 품에 있지 못하고 요양원으로 보내지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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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정도 차이는 있지만, 누구도 치매라는 병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이런 병을 충분히 극복하고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 이것을 극복하려는 방안 중 하나는 여러 사람이 하나의 공통된 목적을 갖고 같이 활동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여러 사람이 다양한 악기를 가지고 같이 화음을 이루는 오케스트라 활동이 있다. 언뜻 오케스트라는 나름으로 뛰어난 음악적 자질을 가진 전문가나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얘기하는 것은 거창한 오케스트라가 아닌 평범한 일반인 즉, 직장에 다니거나 혹은 본업이 있으면서 음악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하는 그런 오케스트라를 말한다.

가칭 “잘 한다 오케스트라”라고 말하고 싶다. 핵심은 누구에게 잘함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악기로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한자리에 모여 그냥 신나고 재미있게 연주하면서 즐기는 것이다. 실력 여부는 상관없다. 실력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본인의 수준에 맞게 즐겁게 연주하는 것이다.

이렇게 고만고만한 실력으로 연주하다 보니 연주 도중 제대로 화음이 맞지 않고 박자가 틀리더라도 서로 “잘 한다”고 칭찬한다. 이렇게 서로 격려하고 칭찬하고 같이 부대끼다 보면 그 속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찾는다. 그 재미와 즐거움이 결국은 우리 뇌를 건강하게 만들고 그것이 여러 질병에서 벗어나게 하는 가장 좋은 치료 약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격식의 파괴이다. 일반적인 오케스트라 함은 바이올린, 플루트, 첼로, 피아노 등 반드시 갖추어야 할 악기가 있다. 그러나 동네에서 주민들이 모여서 하는 ‘잘 한다 오케스트라’에서는 규정된 악기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누구라도 좋아하는 악기가 있으면 그 악기로 혼자가 아닌 우리가 같이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제 50을 넘어 60, 70을 향해 가는 분이 많을 것이다. 흐르는 세월 앞에 그냥 단순히 몸을 맡기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다.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일상의 거리를 찾아서 노년을 행복하고 즐겁게 보내는 것이 더욱 값진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인생을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위에 언급한 활동도 좋은 예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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