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폭탄보다 세다… 웃음을 되찾아주니까"

펜은 칼보다 강하고, 때로 폭탄보다 세다. 프랑스 잡지사 샤를리 에브도가 이슬람교 선지자를 풍자한 만화를 게재했다가 폭탄 테러를 당한 2015년 1월, 이 만화가 파리에서 현지 출간됐다. "사인회에 찾아와 '테러 이후 이 만화 덕에 웃음을 되찾았다'고 말하는 독자가 많았다. 출판사조차 예상치 못한 성공이었다." 농장의 포식자 대신 병아리 보호자가 돼버린 마음 약한 여우 이야기, 처음 방한한 '빅 배드 폭스'의 만화가 벵자맹 레네(35)가 말했다.

지난해 11월 국내 상륙한 이 만화는 2016년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축제 '야수상' 수상에 이어, 프랑스 아마존 만화부문 1위와 프낙(fnac) 서점 베스트셀러 1위를 거머쥐었다. '19금 요소' 없는 우화(寓話) 만화로는 이례적인 성과. 막 부화하려는 달걀을 훔쳐 키운 후 잡아먹으려던 여우는 자신을 엄마라 부르는 햇병아리들을 사랑하게 되고, 병아리를 돌려받은 어미 닭은 결국 여우를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라퐁텐 우화와 디즈니를 달고 살았다"는 저자의 고백처럼 '빅 배드 폭스'의 절대적인 비중은 유년의 기억에 있다. "여섯 살 때 아버지와 농장에 간 적이 있다. 병아리가 태어나는 첫 순간을 보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병아리는 태어난 순간 처음 본 사람을 엄마로 간주한다'며 겁을 줬다. 난 준비가 안 돼 있었고 뛰쳐나왔다." 고등학생이 돼서도 레네는 그 기억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럼 누가 병아리 엄마가 되면 재밌을까? "내 이름(Renner)이 여우의 프랑스식 발음(Renard)과 비슷하다. 소심한 내가 여우랑 비슷하다니. 그래서 조금 멍청한 여우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우화를 그린다. 공동 감독으로 참여해 곰과 생쥐의 우정을 그려낸 전작 '어네스트와 셀레스틴'(2012)도 마찬가지. "동물은 고정관념을 극대화하기 좋은 장치다. 여우는 교활하고, 닭은 순하고. 그걸 비트는 작업이 재미있다. 우화가 필요한 건 오히려 어른이다." 만화는 정치적 선입견을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여우가 육식을 한다고 나쁜 동물인가? 여우는 그저 자신의 본분을 다할 뿐이다. 있는 그대로를 보자. 한국의 정치·사회적 지형도 복잡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한국 독자의 반응이 기대된다."

애니메이션 감독을 겸하고 있다. 국내에도 개봉한 동명의 애니메이션이 최근 프랑스 세자르 영화제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대상을 차지했다. "네티즌들이 이 만화를 바탕으로 한 '여우가 병아리 잡아먹는 게임'을 제작한 걸 본 적 있다. 놀라웠다. 창의적인 형식은 늘 고민하고 있다." 웹툰의 가능성도 열어뒀다. "지금도 블로그에 틈틈이 만화를 올리고 있다. 게시물을 2009년 만화책 '배달해야 할 아기'로 출간한 적도 있고. 지금은 스마트폰용 판타지 히어로 만화를 준비 중이다. 이번에도 주인공은 동물이다. 돼지와 토끼와 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