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2P 업체와 인터넷 은행이 불붙여 신용등급 4~6등급 소비자에 10% 안팎 금리로 큰 인기 저축은행·카드사까지 뛰어들어
- 1년새 대출규모 2배로 대출기준 심사 다양해져 사회 초년생·연금생활 은퇴자도 고금리 대신 중금리 대출 이용
저축은행, 카드사와 P2P(Peer to Peer·개인 대 개인) 대출 업체, 인터넷 전문은행이 동시에 눈독을 들이는 분야가 있다. 정부까지 이 시장을 활성화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이들의 타깃은 바로 연 10%대의 중(中)금리 신용 대출 상품 시장이다. 중금리 대출 상품은 20% 이상의 고금리 대출과 5%대 이하의 저금리 대출 사이의 중간 금리 대출 상품을 말한다. 담보 없이 3000만~5000만원 안팎을 빌리려는 신용등급 4~6등급 소비자가 주요 고객이다. 국내 금융권에서는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은행권에서 낮은 금리의 대출을 받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고금리 상품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작년 말 기준 시중은행 평균 대출 금리가 5%대인 반면 저축은행·카드사 등 2금융권의 평균 대출 금리는 20%가 넘었다. 시중은행에서 거절당하면 곧바로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다보니 '금리 절벽'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최근 중간 지대의 대출 시장이 생겨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양한 대출상품이 나오면서 이자 다이어트를 노려볼 수 있게 됐다.
◇중금리 대출시장에서 경쟁 격화
2016년 국내 중금리 대출 시장 규모는 1조3210억원이었지만, 작년에 이미 3조원을 돌파했다. 불씨를 댕긴 것은 2015년쯤 8퍼센트, 렌딧 등 P2P 업체들이 중금리 대출 시장에 진출하면서부터다. 이들은 신용등급이 4~6등급인 소비자들에게 평균 10% 안팎의 대출을 했다. 당시 저축은행이나 카드사 등의 고금리 대출 상품과 차별화한 것이다. 저축은행들도 2015년 말 맞불을 놓기 시작했다. SBI 저축은행이 평균 9.9% 금리로 스마트폰을 통해 빌려주는 '사이다' 대출 상품을 선보인 게 대표적이다.
작년에는 케이뱅크 등 인터넷 전문은행까지 출범해 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지고 있다. 5~6등급 신용자 기준 대출금리를 7%대 안팎까지 낮췄다. 카드사까지도 최근 중금리의 대출상품을 내놓고 있다. KB국민카드가 2016년 선보인 '생활든든론'(금리 6.7~14.65%)은 올해 초 대출 규모가 3000억원을 넘어섰다.
금융당국은 최근 중금리 대출시장이 커지는 이유로 관련 업체들의 소비자 상환능력 평가 기술이 점점 개선되는 것을 꼽는다. 과거에는 신용등급 위주로 대출 금리가 정해졌지만, 지금은 소비자의 수입과 지출이 안정적인지, 현금흐름이 얼마나 좋은지도 살펴보고, 인터넷을 통해 개인의 생활 습관을 분석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양재훈 금융위원회 사무관은 "다양한 기준으로 대출 심사를 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업체들의 심사능력도 좋아지면서 대출 상품이 세분화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고금리→중금리 '다이어트' 가능
중금리 대출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가장 수혜를 보는 것은 소비자들이다. 상품군이 다양해지면서 이를 비교해보고 좀 더 싼 이자의 상품을 골라 선택할 여지가 커졌다. 금융권에서는 사회에 막 진출해 거래 실적이 많지 않은 사회 초년생, 고정적인 직업은 없지만 연금으로 안정적인 소득을 올리는 은퇴자들에게 더욱 유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회사별로 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방식이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 상품을 비교해보면 금리 다이어트를 할 가능성이 있다.
회사원 김모(39)씨는 최근 P2P 업체에서 '대출 갈아타기'로 월평균 18만원쯤 이자를 아끼게 됐다. 김씨는 현재 대기업에서 월급 500만원을 받고 있지만, 신입사원이던 몇 년 전 아버지의 병원비를 대느라 급하게 제2금융권에서 연 24% 금리로 2500만원을 빌렸다. 하지만 최근 김씨는 P2P 업체 8퍼센트를 통해 연 8.4% 금리로 대출을 받았다. 그 돈으로 비싼 금리의 2금융권 대출을 갚고, 낮은 금리의 대출로 바꿀 수 있었다. 신용등급이 5등급이지만 장기간 현금 흐름이 좋다는 점이 반영돼 대출금리가 크게 낮아졌다.
정부는 중금리 대출시장이 커질수록 부채의 질이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예컨대 A씨가 2000만원을 연 20%짜리 금리 조건으로 대출받았다가 연 10%짜리 대출상품으로 갈아탈 경우 대출 규모는 똑같이 유지되지만 A씨의 이자 부담이 절반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대출받은 사람의 상환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향후 민간에 인센티브도 주기로 했다. 카드·캐피털 등 여신전문 금융회사는 현재 자산 대비 대출 비중을 30% 이하로 유지하도록 하는 규제가 있는데, 중금리 대출 규모가 1000억원이라면 800억원만 대출에 반영하는 등 중금리 대출을 많이 해주면 대출 규제를 완화해주겠다는 것이다. 현재 3조원대인 중금리 대출 시장 규모를 2022년 7조원대까지로 늘리는 게 목표다. 김기한 금융위 중소금융과장은 "기존에는 신용등급이 약간만 낮아도 고금리로 대출받을 수밖에 없어 소비자 입장에선 불합리한 측면이 있었다"며 "자기의 상환 능력에 맞게 적절한 상품을 골라 이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중(中)금리 대출 상품
연 10% 안팎의 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상품. 연 3~5%대의 은행 대출 상품과 2금융권에서 연 20%대에서 판매하는 고금리 대출 상품의 중간 금리 수준을 내건 대출 상품이란 의미에서 나온 말이다. 신용등급 10개 등급 가운데 4~8등급인 중간 등급 신용자들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할 경우 고금리 대출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정부와 민간에서 중간 금리 상품이 나오면서 이자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P2P(Peer to Peer·개인 대 개인) 대출
개인이나 소상공인이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P2P 대출 플랫폼에 접속해 필요한 대출 액수와 금리, 대출 기간을 등록하면 여러 명의 투자자로부터 십시일반 대출금을 투자받아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다. 일반 은행처럼 신용 평가 회사로부터 받은 대출자 정보와 자체적인 상환 능력 평가로 대출을 실행하며, 대출자로부터 매달 원금과 이자를 받아 투자자에게 나눠주는데 중금리 대출이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