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아이콘' 송시열은 여성의 재혼을 지지했다

선비와 함께 춤을

백승종 지음｜사우｜248쪽 | 1만5000원

"이 나라에서는 무슨 까닭으로 여성에게 두 남편을 섬기지 말라고 강요하는가?" 조선 후기 여성의 재혼을 허용하자는 급진적 생각을 지닌 '선비'가 있었다. 뜻밖에도 보수의 아이콘처럼 여겨지는 노론의 영수 송시열이었다. 그는 겉만 번지르르한 도덕 때문에 사회에 더 큰 문제가 일어난다고 짚었다.

역사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이 책에서 '선비'라고 일컬어진 조선 지식인들의 이면(裏面)을 짚는다. 그들은 생각보다 훨씬 개방적이었고 진취적이었으며, 웅대한 포부와 경륜을 지니고 세상의 부조리와 싸우기도 했다. 정도전은 백성에게 땅을 나눠주자는 경제민주화를 추구했고, 김정희는 동아시아 사상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해 독특한 서체를 개발했다. 이익은 병아리를 보듬는 외눈박이 암탉에게서 내적 화합이라는 약소국의 생존법을 깨달았으며, 언관인 백인걸은 기회주의적인 철새 정치인들을 꾸짖고 내쳤다.

저자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 한국에 '선비'라는 고상한 인격체가 광범위하게 형성됐다"고 말한다. 자신의 나약함을 딛고 일어나 유혹과 외압에 굴하지 않으며 지조를 지켰던 그들의 전통은 한국사의 자산이 됐다는 얘기다. 그들의 이념체계를 관통하는 성리학에 대한 설명이 인색한 데다 나라를 망하게 했던 자들도 당대에는 '선비'라 불리지 않았을까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세상과 부딪치며 살았던 숱한 지식인들의 다채로운 생애가 잔잔한 감동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