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청년 실업난 속에 대기업 상반기 신입 사원 공채가 본격화했다. 하지만 대기업 10곳 중 4곳은 아직 채용 계획조차 잡지 못했다. 채용을 확정한 대기업도 작년보다 신입 채용 규모를 줄일 전망이다. 정부가 신체 조건, 학력, 출신지 등을 지원서에 적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 정책을 강조하면서 지원 자격은 완화됐지만 정작 '양질(良質)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취업 준비생의 '취직 바늘구멍 뚫기'는 점점 힘겨워지고 있다.
◇상반기 채용 확정 81곳, 작년보다 7.3% 적게 뽑아
한국경제연구원이 여론조사 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2018년 상반기 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를 19일 내놨다. 조사 대상 500대 기업 중 182곳이 응답했는데 17곳(9.3%)이 '작년보다 신규 채용을 줄일 계획'이라고 했다. 5곳(2.7%)은 아예 '상반기 신규 채용은 없다'고 밝혔다. '채용을 늘리겠다'고 답한 기업은 16곳(8.8%)에 그쳐, '신규 채용을 줄이거나 없다'고 한 기업(12%)보다 적었다. 응답 기업 64곳(35.2%)은 '작년 수준'이라고 답해 현상 유지에 급급했다.
설문 조사 당시(2월 7일~3월 2일)까지 올 상반기 채용 계획을 확정하지 못한 기업도 80곳(44%)에 달했다. 새해 들어 두 달이 지나도록 상반기 신규 채용 여부조차 결정하지 못한 것은 그만큼 기업 안팎의 경영 환경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4곳 중 1곳은 '회사 내부 상황 어려움'(25.9%)을 채용을 늘리지 못하는 이유로 꼽았다. 올 상반기 대졸 신입 사원 평균 연봉은 4017만원으로, 작년 상반기보다 200만원(5.2%) 올랐다.
취업 포털 사이트 인크루트가 조사한 결과로는 5대 그룹은 올해 3만8000명을 새로 뽑을 예정이다. 대기업별로 구체적 신규 채용 숫자를 공개하지 않은 곳이 많아 올 상반기 정확한 채용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매출 상위 기업 321곳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상반기 채용 규모를 확정한 81곳은 작년보다 7.3% 적게 뽑는다.
◇ 상반기 채용 시즌 막 올라
삼성그룹은 올 상반기 삼성전자 등 계열사 17곳이 신입 사원 채용(3급)을 진행한다. 삼성은 올해 채용 규모를 작년(9000명) 수준으로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서류 지원 마감이다. 채용은 계열사별로 진행되지만 '삼성 고시'라는 GSAT(삼성 직무 적성 검사)는 4월 15일 전국 다섯 지역(서울·부산·대구·대전·광주)과 해외 두 곳에서 한꺼번에 치러진다. 올 상반기부터 계열사별로 다양한 직무 지식 평가 방식이 도입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일부터 공채에 나서 서류 지원 접수를 마감했다. AI(인공지능), 스마트카 등 미래 전략 부문 인재를 집중 채용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8500명 채용을 밝힌 SK그룹은 10여 계열사에서 신입과 인턴 사원을 모집 중이다. 23일 서류 지원을 마감하고, 다음 달 22일 필기시험(SKCT)을 치른다. 20일부터 채용에 나서는 롯데그룹은 식품, 관광·서비스, 유통, 석유화학, 건설·제조, 금융 분야 등 40곳이 신입 800명, 하계 인턴 350명 등 1150명을 뽑는다. 작년과 같은 규모다.
공공기관은 올해 2만8000명을 새로 채용한다. 애초 밝힌 것보다 5000명 늘어났다. 중복 합격자 발생을 줄이기 위해 비슷한 기능을 가진 공공기관이 같은 날 필기시험을 치르는 합동 채용이 확대된다. 상반기 채용은 공공기관 45곳이 3~5월 아흐레로 나눠 시험을 진행한다.
◇서류 전형에 인공지능(AI) 도입… ‘자소서’ 표절 꼼짝 마!
올 상반기 대기업 채용의 특징에 대해 사람인 임민욱 팀장은 “두루 잘 아는 ‘융합형 인재’보다 해당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뽑는 직무 적합형 인재 채용이 한층 강화된다”고 말했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이 상반기부터 ‘상식’과 ‘역사 에세이’를 폐지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삼성은 GSAT에서 ‘상식’ 영역을 없애 5과목에서 4과목으로 줄였다. 출제 범위가 워낙 광범위하고, 시험 시간이 부족해 지원자들이 애를 먹었다. 현대차그룹은 ‘제국과 세계화’ ‘쇄국정책과 각국의 보호무역 기조’ 등 주제를 주고 서술하는 ‘역사 에세이’가 채용 특징이었다. 그러나 주제가 어렵다 보니 학원 과외까지 등장하는 부작용이 나타나자, 5년 만에 폐지했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일자리전략실장은 “취업 준비생은 최근 기업들이 블라인드 채용을 확대하고 있어 직무·능력 중심 채용 방식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1만명 채용을 밝힌 LG는 취준생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준다는 취지로 많게는 계열사 3곳까지 중복으로 지원할 수 있게 했다.
롯데그룹 지원자는 자기소개서 작성에 신중해야 한다. 이번 채용부터 백화점, 마트, 정보통신 등 일부 계열사가 서류 전형에 AI(인공지능) 시스템을 도입하는데, 표절 자기소개서를 가려내기 위해서다. 신세계그룹은 16개 계열사와 파트너사와 함께 28일 서울 코엑스에서 채용 박람회를 갖는다. 신세계그룹은 올해도 1만명 이상 새로 채용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