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형마트 메트로 매장 점원 줄이고 24시간 영업 포기… 11개 라인 중 자동계산대 5개로
- '최저임금 15캐나다달러'에 분열 식당 음식·식료품 값 오르고 각종 시위에 정치권도 혼돈
토론토=김덕한 특파원
밤 11시. 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대학생 크리스틴의 휴대전화로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이라고 적힌 메시지가 도착했다. 커피전문점 '세컨드컵'에서 시간제로 일하는 크리스틴은 매일 밤 도착하는 이튿날 근무시간 배정표를 마음을 졸이며 열어보지만 요즘은 한숨을 내쉬는 날이 늘어나고 있다. 중간방학 기간이라 더 일을 하고 싶지만 근무시간이 계속 줄어들기 때문이다.
크리스틴은 "매니저가 같은 시간대 매장 근무 인원을 3명에서 2명으로 줄이고, 오래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일을 몰아주고 있다"면서 "학교에 가느라 시간 변동이 많은 나 같은 사람은 곧 쫓겨날 것 같다"고 말했다.
캐나다 최대 도시 토론토 등 캐나다 전체 인구의 40%가 속한 온타리오주는 올해 1월 1일부터 최저임금을 시간당 11.6캐나다달러(약 9860원)에서 14캐나다달러(약 1만1900원)로 한 번에 21%나 올렸다. 내년 1월 1일부터는 캐나다 진보 진영과 노동운동계가 오랫동안 부르짖어온 '시간당 15달러'로 오르게 된다. 그런데도 온타리오주 근로자들은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크리스틴처럼 일할 시간이 줄어들거나 아예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시간제 일자리 13만개 사라져
대형마트 '메트로'의 리버티 빌리지점은 인건비 줄이기가 한창이었다. 전체 계산대 11개 라인 중 왼쪽 3개 라인은 고객이 직접 물건의 바코드를 찍어 계산하는 자동계산대였다. 매니저 알렉스는 "자동계산대를 올여름까지 5개 라인으로 늘려 계산원을 더 줄일 계획"이라면서 "본사에서 지난해 연간 3500만 캐나다달러였던 인건비가 올해 4500만~5000만 달러로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며 자동화를 앞당기고 있다"고 말했다. 메트로는 '24시간 영업'도 포기했다. 알렉스는 "토론토 중심가 한두 곳을 빼곤 대부분의 매장이 자정부터 아침 7시까지는 문을 닫는다"며 "불편을 호소하는 고객들이 많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캐나다 토론토의 대형마트 메트로에서 손님들이 무인 계산대를 이용하고 있다. 토론토가 속한 온타리오주는 올해 1월부터 최저임금을 한꺼번에 21% 올리면서 일자리가 줄어드는 부작용을 겪고 있다. /김덕한 특파원
최저임금 인상은 일자리 감소로 이어졌다. 캐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월 캐나다 전역에서 감소한 일자리 수는 9년 만에 최대치인 8만8000개에 달했다. 시간제 일자리가 13만7000개나 사라져 새로 생긴 상근직 일자리 4만9000개를 덮어버렸다. 특히 온타리오주에서만 사라진 일자리가 5만900개로, 캐나다 전체 일자리 감소분의 58%를 차지했다. 토론토스타 등 현지 언론은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한 온타리오주가 시간제 일자리 감축을 이끄는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캐나다은행은 내년에 최저임금 15캐나다달러가 전국에서 실현될 경우, 일자리 약 6만개가 사라질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사회적·정치적 갈등도 격화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도 벌어지고 있다. 캐나다 최대 토종 패스트푸드 체인 '팀 호튼스' 가맹점들의 '임금 편법 삭감'이 이슈가 되면서 노동단체들은 팀 호튼스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근로자 권익 옹호단체 '노동자행동센터(Workers' Action Center)'의 디나 라드 코디네이터는 "팀 호튼스 일부 매장은 올해부터 근무복 값을 직원들이 내게 하고, 5시간에 30분씩 보장하던 유급 휴식 시간을 없애버려 근로자들이 손에 쥐는 급여는 최저임금 인상 전과 별 차이가 없게 됐다"면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이민자들이나 어린 학생들이 많이 일하고 있는 팀 호튼스에서 쉽게 저항할 수 없는 이들을 상대로 횡포를 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적 논쟁도 가열되고 있다. 특히 '15달러'라는 숫자를 놓고 진보-보수 진영의 대립이 치열하다. 주정부와 주의회 다수 의석을 장악하고 있는 온타리오 자유당은 지난해 11월 최저임금 인상 관련법을 강행 처리한 후, 두 달 후인 올해부터 바로 시행했다. 하지만 야당과 기업들은 반발하고 있다. '캐나다 독립사업체연합(CFIB)' 줄리 크위친스키 국장은 "15라는 숫자부터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면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임 노동자들이 누리는 혜택은 일부일 뿐이며 일자리 감소 등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이 비숙련 노동자 등 취약 계층에 집중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친노동 진영은 1월 들어 일자리가 감소한 것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크게 늘어났던 시간제 일자리가 1월 들어 줄어드는 계절적 요인 때문이라며 1월 데이터만 가지고 최저임금 인상을 흠집 내려 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