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3.23 01:26

[이명박 前대통령 구속] 구속 영장 발부 스케치

자택서 영장 심사 기다린 MB
밤 11시 넘어 발부 소식에 평상복 벗고 정장 갈아입어
가족들은 바라보다가 눈물 적셔

저녁 무렵부터 측근들 속속 모여
김황식 前총리 "잘 견디시라"

22일 밤 11시 6분. 박범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이 소식을 접한 이 전 대통령과 가족, 측근들은 바삐 움직였다. 이 전 대통령은 평상복을 벗고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넥타이를 몇 번이나 고쳐 매며 거실로 걸어가는 장면이 TV 화면에 잡혔다. 가족들은 이 전 대통령을 바라보다가 자리에 주저앉거나 옷소매로 눈가에 번진 눈물을 닦았다.

이 전 대통령은 영장 발부 직후인 11시 14분 페이스북에 410자(字)짜리 입장문을 올렸다. 영장 발부 전날인 21일 새벽에 쓴 글이다. 지난 14일 검찰에 출두하며 입장을 낸 데 이어 두 번째다. 그는 "깨끗한 정치를 하고자 노력했지만 미흡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송구한 마음뿐"이라고 했다.

밤 12시 서울중앙지검 송경호 특수2부장검사와 신봉수 첨단범죄수사1부장검사가 수사관과 함께 이 전 대통령 자택에 도착했다. 이들은 영장을 제시하고 수감 장소가 서울동부구치소라고 알렸다. 자택을 나온 이 전 대통령은 도열해 있던 참모들과 악수했다. 멀리 있는 사람들에겐 가볍게 손을 흔들기도 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검찰이 제공한 K9 승용차 뒷좌석 중간으로 들어가 앉았다. 양옆엔 수사관이 앉았다.

차량은 밤 12시 18분 서울동부구치소에 도착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일반인과 같은 수감 절차를 밟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 절차대로라면 이 전 대통령은 구치소 입감(入監) 때 교도관에게 이름, 주민번호 등을 말해 본인 확인을 받은 뒤 신체검사를 받는다. 이후 남성 미결수(未決囚)에게 지급되는 황토색 수의를 제공받게 된다. 수의 한쪽 가슴엔 수인(囚人) 번호가 찍혀 있다. 이때부터 이 전 대통령은 수인 번호로 불리게 된다.

23일 새벽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가 서울동부구치소로 향하는 아버지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들의 눈물 - 23일 새벽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가 서울동부구치소로 향하는 아버지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고운호 기자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이른 아침에 일어나 대부분의 시간을 서재에서 혼자 보냈다고 한다. 저녁 무렵 이명박 정부에서 일했던 참모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얼굴이 초췌했다고 한다. 이 전 대통령은 김황식 전 국무총리와 김효재 전 정무수석과 50분간 차를 마시며 재임 중 함께 일했을 때를 회고했다고 한다. 이번 사건 얘기는 하지 않았다. 김 전 총리는 자리를 뜨기 전 "잘 견디시라"는 말을 건넸다. 이 전 대통령은 별말이 없었다고 한다. 이재오 전 의원과 권성동·김영우·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과 이동관·정동기 전 수석도 자택을 찾았다.

전직 대통령이 자택에서 영장실질심사 결과를 기다린 건 처음이다. 1997년 이 제도가 도입된 후 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작년 3월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그는 서울중앙지법에 나와 8시간 41분간 영장 심사를 받았다. 최장 기록이었다. 이후 서울중앙지검으로 이동해 결과를 기다리다 다음 날 오전 3시 3분 구속영장이 발부된 후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구속은 유죄라는 것이 아니다. 구속영장은 유죄가 의심될 정도로만 혐의가 소명되면 발부된다. 하지만 유·무죄를 다투는 형사재판에선 훨씬 까다롭게 증거와 법리를 따진다. '합리적 의심'이 남지 않을 정도로 증명해야 유죄가 인정된다. 이 전 대통령은 관련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검찰이 뇌물 수수 유죄 입증 증거라는 문건에 대해서도 "조작된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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