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돈' 넣는 민간 구조조정 철저한 시장 논리로 기업 되살려 핀란드, 노키아 망했을 때도 세금 안넣고 실직자 구제 힘써
미국계 사모펀드 KKR은 2009년 오비맥주를 18억달러에 인수했다. KKR은 시설 투자에 2000억원을 쏟아붓고, 마케팅 비용을 30% 늘리는 등 공격 투자와 영업으로 업계 2위였던 오비맥주를 1위로 끌어올렸다. 5년 만인 2014년 인수가보다 3배가 넘는 58억달러에 팔았다. 오비맥주를 KKR에 매각했던 AB인베브가 4조원을 더 주고 다시 사들였다.
고객 돈으로 기업을 사들인 사모펀드가 회사 가치를 끌어올려 비싼 값에 되파는 사례는 흔하다. 하지만 금호타이어, 대우조선해양, 대우건설 등 정책금융 기관인 산업은행이 공적자금을 투입해 관리해온 국내 기업들은 빚으로 연명하는 '좀비 기업'이 돼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기 돈'을 넣고 죽기 살기로 기업을 되살리는 민간 주도의 구조조정에 비해, '눈먼 돈'을 넣고 경제 논리가 아닌 각종 정치 논리에 휘둘리는 관(官) 주도의 구조조정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지적한다. 구조조정의 주도권을 관에서 민간으로 옮겨야 할 때라는 것이다.
◇"세금 들이붓고도 구조조정 실패한 산은, '먹튀'보다 못해"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2009년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금호타이어에 3조9000억원을 투입했다. 실적은 2009~2012년 잠시 호전되는가 싶더니 급격히 악화돼 지금은 존속 가치보다 청산 가치가 더 높은 기업으로 전락했다. 산업은행이 기업 가치가 떨어질 만큼 떨어진 금호타이어를 매각하겠다고 내놓으니 인수하겠다는 우량 기업은 없고 인지도가 낮은 중국의 더블스타가 사겠다고 나섰다. 결국 경영진과 노조 모두의 반발에 부딪히며 난항을 겪었고, 금호타이어 가치는 그사이 더 낮아졌다.
산은이 막대한 돈을 쏟아부은 대우건설과 대우조선해양도 같은 길을 가고 있다. 대우건설은 부실이 지속돼있는 채로 매각을 진행하다, 중견기업인 호반건설조차 인수 의지를 접었다. 12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우조선해양은 작년 반짝 실적 회복에 성공했지만 장기적인 회생 여부는 불투명하다.
경영난에 처한 기업에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이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정부가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방식은 IMF 외환위기 이후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엔 국가 경제가 혼돈에 빠지면서 정부가 큰 그림을 그리고 과감히 산업 구조를 개편하는 구조조정이 효과를 봤지만, 최근엔 관의 개입이 경제 논리보다는 정치 논리에 휘둘리면서 오히려 기업을 망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강흠 연세대 교수는 "민간이 주도하게 되면 철저히 '기업의 회생과 이익'을 목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지만, 관이 주도하면 '일자리 보전' 같은 정치 논리와 파견된 임직원 본인의 이해관계가 개입돼 구조조정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산은의 관리를 받는 한 기업 관계자는 "산은에서 파견된 임원이 계열사 등 본인이 갈 다음 자리에만 관심이 있는데 부실 정리가 제대로 되겠느냐"고 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해외 사모펀드가 우리 기업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먹튀'를 한다고 비난하지만 산업은행이 '먹튀'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며 "어쨌든 구조조정에 성공했고, 회사 가치를 올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 등은 철저히 시장 논리에 맡겨
우리는 기업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지역 경제 충격 최소화" "일자리 보전" 등을 명분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한다. 하지만 미국·유럽 등 선진국은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민간 기업들이 시장에서 부실 기업을 인수해 투자와 사업 개편을 추진한다.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려 되파는 사모펀드도 한 축을 담당한다.
미국에선 2009년 GM이 파산 보호를 신청했을 때, 정부가 이례적으로 공적자금을 넣었지만 구조조정은 철저히 민간에 맡겼다. 월가의 최고의 투자·구조조정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드림팀'을 꾸렸고, 브랜드 10여 개를 4개로 줄이는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한 해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핀란드는 2009년 국가 경제의 25%를 차지하던 노키아가 망했을 때에도 공적자금을 한 푼도 넣지 않았다. 정부는 대신 실직자 구제 프로그램을 돌리고, 창업 희망자에게 4000만원씩 지원해 '창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힘썼다. 당시 4만명이 해고됐지만, 핀란드 GDP는 3년 만에 2.3% 성장했다.
아직까지 해외 사모펀드의 먹튀를 우려하는 분위기가 있는 만큼, 구조조정에 전문성이 있는 민간 자본을 육성하고, 필요한 경우 대기업에 맡기는 분위기도 필요하다. 신현한 연세대 교수는 "국내 사모펀드나 벤처캐피털 등이 더 성장할 필요가 있다"며 "또 대기업에 매각하면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게 아니라 잘 살릴 수 있는 기업이라면 대기업에도 적극적으로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