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가게가 사랑방… 주인이 강의하고 공연도

25일 오후 2시 서울 동교동에 있는 음반점 '팝시페텔'. LP와 CD가 빼곡히 들어찬 진열장 사이 공간에 의자들이 놓였다. 김경진 팝시페텔 대표가 매주 2~3회 여는 음악 강좌가 있기 때문이다. 강좌 주제는 이날 71세 생일을 맞은 영국 팝스타 엘튼 존. 스크린에 엘튼 존의 젊은 시절 공연 모습을 띄운 김 대표는 "'피아노록의 대부'라고 불릴 만큼 엘튼 존 음악에는 늘 피아노가 중심에 있다"며 강의를 시작했다. 팝시페텔 음악 강좌는 10명 미만의 소규모 모임이지만 꾸준히 찾는 사람이 생길 만큼 주목받는다.

골목에서 부활하고 있는 음반 가게들은 상점이라기보다 커뮤니티에 가깝다. 팝시페텔처럼 음악 강좌를 열거나 청음회, 소규모 공연 같은 이벤트로 음악팬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 방배동에 있는 '룸360'은 주인인 DJ소울스케이프가 디제잉 공연을 하거나 음악 관련 기념품을 할인 판매하는 플리마켓, 음악팬들과 함께 하는 바비큐 파티를 연다. 서울 을지로3가 '클리크레코드'는 가게 한쪽에 커피나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카페 공간을 두고 주기적인 디제잉 공연도 연다.

음반점들이 이런 행사에서 얻는 수익은 미미하다. 그렇지만 이벤트를 꾸준히 여는 이유는 '음반 가게에 찾아오는 사람'을 늘리기 위해서다. 직접 와서 음반을 만져보고 들어보는 사람들이 늘면 매출도 자연스레 늘 것이라는 생각이다. 음반은 이제 단순 소비재가 아니라 경험과 함께 팔리는 물건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음반 가게에 가서 음악을 들어보고 사는' 라이프 스타일을 파는 것이다.

음반 가게 주인들은 하나같이 '음악 큐레이터'를 자처한다. 자신만의 음악 컬렉션을 진열·판매하는가 하면 소셜 미디어에 특정 주제로 음반 큐레이션을 발표해 관심을 끈다. 이는 라이언 라파엘리 하버드대 교수가 말한 '독립 상점의 3C 전략'과 부합한다. 라파엘리 교수는 독립 상점이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게끔(Convening) 하고 개성적인 상품 추천(Curation)을 하며 지역의 사랑방 역할(Community)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음반점 도프레코드 김윤중 대표는 "음반 시장은 죽어도 음악 취향은 죽지 않는다"면서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일수록 독립 음반점의 생존력도 강해진다"고 말했다.

이 같은 독립 음반점들이 연대해 커뮤니티를 만들기도 한다. 2011년부터 매년 독립 음반점들이 모여 여는 음반박람회 '서울레코드페어'가 각종 음악 페스티벌들을 제치고 '진정한 음악 애호가들의 축제'라는 명성을 얻은 것도 이 같은 노력 덕분이었다. 서울레코드페어는 첫해 1500명이었던 관객이 작년 1만명으로 늘어날 만큼 음악팬들의 성원을 받고 있다. 2016년 생겨난 온라인 카페 '카세트테이프를 듣는 사람들'에는 2900여명이 회원으로 있는데, 이들은 음반점들의 할인 행사나 작은 공연에 참여한 경험담을 나눈다. 일반인이 이런 커뮤니티를 통해 각종 이벤트 기획을 하기도 한다. 대학생 오현재(25)씨는 4월 27일 서울 연희동 라이브클럽 '프리버드'에서 이탈리아 록밴드 '언리얼 시티'의 내한 공연을 연다. 오씨는 독립 음반점들에서 만난 음악팬들로부터 십시일반 투자받아 공연을 성사시켰다. 그는 "내 주변엔 음악이라고 하면 아이돌밖에 모르는 사람들뿐인데 독립 음반점에 가면 음악 취향이 비슷하거나 이해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