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정신병원… 문 열자 혼돈이 시작됐다

삐그덕, 하고 열릴 것 같았던 문은 막상 입을 벌리며 '끄아아악' 하는 소리를 토한다. '쿵' 하고 부딪혀 올 줄 알았는데 누군가 뒤에서 '탁탁탁' 하고 작은 소리를 낸다. 누군가 등을 기분 나쁘게 긁은 것 같은데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는 느낌이다.

오늘 개봉하는 영화 '곤지암'(감독 정범식)은 예상을 비껴가는 질감과 소리로 관객을 얼어붙게 만든다. 6명의 출연 배우가 얼굴과 손에 액션캠을 달거나 들고 움직이며 1인칭 시점으로 찍었다는 점에선 공포 모큐멘터리의 원조 격인 '블레어 윗치'(1999)를 떠올리게 한다. 기괴한 효과음은 앨프리드 히치콕으로부터 시작해 끊임없이 변주된 고전적 연출이다. '곤지암'은 그러나 지금껏 많은 공포 영화가 걸어온 길과는 다른 방향을 향해 내달린다. '여고괴담'(1998)과 '소름'(2001)이 깊은 원한 끝에 터져 나온 외마디 같은 한국형 호러 영화였다면, '곤지암'은 뿌리도 근원도 알 수 없는 공포 그 자체의 물컹한 덩어리를 덜컥 하고 던진다. 공포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관객들은 하릴없이 주인공들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서사(敍事)를 이해할 필요도 주인공 감정을 헤아릴 필요도 없다. 주인공들과 한 몸이 돼 떨고 소스라치고 비명 지르면 된다. 어떤 가공도 하지 않은 채 두려움 그 자체를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대담하고 발칙한 영화이기도 하다.

최근 논란을 빚었듯 이 영화는 사람들이 '곤지암 정신병원'으로 불렀다는 경기 광주시 곤지암읍 신대리에 있는 남양신경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한다. 이 건물 실제 소유주가 "영화 때문에 건물 매각에 차질이 생겼고 그만큼 심한 정신적 피해를 입고 있다"면서 상영 금지 가처분신청을 냈지만 지난 20일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제작진은 이 건물에서 영화를 찍지 않았다. 부산의 한 폐교를 찾아내 남양병원과 똑같이 보이도록 세트를 만들어 찍었다.

영화는 20~30대 남녀 7명이 이 폐건물로 공포 체험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이들은 오랫동안 방치된 건물 구석구석을 돌며 그 모습을 인터넷에 생중계한다. 카메라는 이들 눈이자 목소리다. 멈칫하고 전진하고 이리저리 튕기고 부딪히고 흔들린다. 고막을 찢을 듯한 비명이 들릴 땐 카메라도 쉴 새 없이 구르고, 숨조차 몰아쉴 수 없는 순간엔 스크린도 진동한다. 때론 보기 어지럽고 산만하다. 그 메스꺼운 혼돈의 순간조차 공포의 일부였음을 깨닫는 건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다. 공포 영화 주인공은 대개 말할 수 없는 사연을 감추고 있기 마련이지만, '곤지암' 주인공들은 그저 폐허가 된 정신병원 내부의 문을 열고 닫는 데만 집중한다. 문이 열릴 때마다 예기치 못했던 소리가 나고, 기대하지 않았던 풍경이 살갗을 스치고 지나간다.

배우들 호흡은 기대 이상이다. 이들은 극(劇) 안에 있다기보다 실제로 폐쇄된 병원에 갇힌 이들처럼 보인다. 배우들이 실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각자 카메라를 들고 영상을 찍었고, 한순간이라도 동선이 어긋나면 다시 찍었다고 했다. 반복되는 연출과 세공 끝에 얻어진 장면이 생생하다. 이 영화의 공포가 파닥파닥 싱싱한 이유다.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