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 내가 하지" 도전하니까 '젊은 오빠'

북채로 포졸의 머리를 내리치고('변방의 북소리'), '칙칙' 소리만 낼 뿐 잽을 날리지 못하는 권투선수에게 물을 끼얹는('내일은 챔피언') 유치한 코미디가 안방을 들썩이던 시절이 있었다. 1980~90년대는 KBS '유머1번지'와 '쇼 비디오 쟈키', MBC '폭소대작전' 등이 호령하던 코미디 황금기. 아이들은 물론 아버지들도 퇴근길을 재촉해 TV 앞으로 모여들었다.

심형래, 김정식, 이홍렬 등 당대 최고 인기를 누리던 개그맨 옆에 임하룡(66)이 있었다. 모자란 병사 심형래는 물론, '밥풀떼기' 김정식('도시의 천사들'), '망구' 이홍렬('귀곡산장'), 전유성('청춘을 돌려다오')과 콤비를 이루며 웃음보를 터뜨렸다. 통기타 라이브 식당에서 MC로 일하던 임하룡을 발탁해 개그맨으로 데뷔시킨 전유성(69)은 그를 '개그계 최고의 어시스트'라고 평가했다.

올해는 그가 "개그맨 임하룡입니다"라고 소개하며 라디오로 데뷔한 지 딱 40년 되는 해. 데뷔 후 20년은 쉴 새 없이 일했고, 그 후 10년은 일이 없어 고민하다, 또다시 10년은 "모든 걸 내려놓고 하고 싶은 일 하며 산다"는 임하룡을 만났다.

"지금도 맛있게 잘 때려요." 회색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고 나타난 임하룡이 너스레를 떨었다. 1981년 KBS 특채 개그맨으로 방송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유머1번지'에서 당시 최고 인기 코미디언이었던 심형래 뒤통수를 때리는 역할로 주목받았다. 심형래가 "하도 맞아 뒤통수에 머리가 안 난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였다.

임하룡의 전성기는 천천히 찾아왔다. KBS 코미디대상이 생긴 첫해인 1987년 고(故) 김형곤이 대상을 받고, 이듬해 심형래가 수상한 뒤 1989년 '청춘을 돌려다오'로 대상을 받았다. 2년 뒤 한 번 더 대상을 타면서 진정한 1인자는 임하룡이란 말이 나왔다.

그는 '추억의 책가방'을 가장 기억에 남는 코너로 꼽았다. "서울 장충고에서 충북 제천고로 전학 가 아이들 앞에서 서울 춤이랍시고 다이아몬드 스텝 추던 기억을 콩트로 만들었죠." 까까머리에 검정 교복, 납작한 책가방을 옆에 끼고 빨간 양말로 현란하게 추던 트위스트 춤은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그때 썼던 까까머리 가발은 지금도 갖고 있다.

'이 나이에 내가 하리?' '일주일만 젊었어도' '젊은 오빠랑 핑크레이디 한잔 할까?' 등 숱한 유행어를 낳은 그에게 위기가 찾아온 건 2001년. 선생님으로 출연하던 KBS 개그콘서트 '봉숭아학당'에서 하차 통보를 받았다. "우리나라는 건물이든 차든, 너무 쉽게 바꾸는 것 같아요. 외국은 수십년 수백년 된 호텔이 더 비싼데. 코미디 역시 오래된 것에 대한 존중이 없어요."

영화판에 신인으로 뛰어들었다. 주연들이 다 찍을 때까지 한참을 기다리다 한 컷 찍는 일이 허다했다. 자존심도 내려놓고 찍은 영화 '맨발의 기봉이', '원탁의 천사' 등에서 주목을 받았다. 출연한 영화만 30여 편. 2005년 개봉한 '웰컴 투 동막골'에서 인민군 하사관 역할을 맡아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받기도 했다.

도전은 지금도 계속된다. 올해는 음반을 냈다. '나는야 젊은 오빠.' "저와 이 세상의 모든 중년에게 선물로 주고 싶었어요." 5월엔 그의 첫 디너쇼도 연다. 전유성, 이홍렬, 엄용수 등 동료들이 대거 출연해 그 시절 그 개그를 재연한다. 그의 노래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나는야 젊은 오빠/아직 이팔청춘이야/우리 인생의 시작은 바로 오늘이다'. 임하룡의 청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