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중식당을 운영하는데, 솔직히 이렇게 힘든 건 처음입니다."
경기도 한 중소 도시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김모(52)씨는 이달부터 짜장면 값을 3500원에서 4000원으로, 짬뽕은 4500원에서 5000원으로 올렸다. 1만원 받던 탕수육(소) 가격은 2000원 인상했다. 김씨가 음식값을 올린 것은 2012년 이후 6년 만이다. 100석 규모에 단골 손님이 적잖아 한 달 평균 8500만원 정도 매출을 올렸는데, 올 들어 종업원 급여를 대폭 올려줬고 식재료비까지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김씨 식당에서 일하는 배달원은 5명. 지난해 4월 250만원에서 270만원으로 오른 급여가 올 초 290만원으로 다시 뛰었다. 김씨는 "최저임금을 훨씬 넘는 수준이지만, '최저임금 인상폭만큼 안 올려주면 다른 식당으로 옮기겠다'는 말에 도리가 없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주방장과 요리사 4명의 급여도 20만~30만원 올렸다"며 "지난해 9월 월급이 오른 홀 서빙 직원 3명에겐 5월쯤 다시 올려주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인건비 상승으로 '먹거리 물가'가 치솟고 있다. 김씨의 식당처럼 전체 지출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20~30%대에 달하는 요식업에선 고정비인 인건비 상승이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한국외식업중앙회가 이달 초 전국 외식업체 285개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77.5%가 "최저임금 인상 이후 영업이익이 감소했다"고 답했고, 78.6%가 "앞으로 메뉴 가격을 올리겠다"고 했다.
◇짜장·짬뽕·햄버거…안 오른 것이 없다
특히 작은 식당과 프랜차이즈 업체에선 비상이 걸렸다. 방송인 백종원씨가 운영하는 홍콩반점0410은 이달부터 짜장면 값을 4000원에서 4500원으로 올렸다. 짬뽕 가격은 4500원에서 5500원으로 20% 넘게 뛰었다. 최근 중식당의 경우 오징어를 비롯해 각종 해물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한 것도 메뉴 가격 인상 압박을 가중시켰다. 김씨는 "지난해 10월만 해도 10㎏ 한 상자에 4만5000원 하던 오징어 값이 최근 9만8000원으로 배 이상 뛰었다"고 했다.
햄버거 업체들은 지난해 11월 롯데리아를 시작으로 KFC, 모스버거, 맥도날드, 버거킹 등이 줄줄이 가격을 올렸다. 가격이 저렴해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이삭토스트와 고봉민김밥도 예외가 아니었다.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커피빈코리아 등 커피 전문점도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최근 1인 가구가 급속히 증가하며 집 밖에서 하루 두 끼 이상을 해결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외식 물가 상승에 따른 서민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외식 물가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8% 상승하며 2년 만에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다.
외식업계 전문가들은 "최근 메뉴 가격을 올리는 식당은 그나마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곳"이라고 지적했다. 주머니가 가벼워진 소비자들이 단 100원이라도 싼 곳을 찾아가는 상황에서 영세 식당들은 손님 끊길 걱정에 가격을 올릴 엄두조차 못 낸다는 것이다.
치킨 등 프랜차이즈 업계에선 배달 대행료를 따로 받거나, 공짜로 주던 음료나 사이드 메뉴를 유료로 전환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피자헛은 지난 8일부터 1만2000원이던 배달 최소 결제 금액을 1만5900원으로 33% 인상했다.
◇자영업자, 줄폐업 사태 닥칠까
가공식품도 하루가 멀다 하고 인상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 1일 햇반(210g)과 스팸 클래식(340g), 비비고 왕교자(455g 2팩) 출고가를 6~7%씩 올렸다. 동원에프앤비는 다음 달부터 어묵 제품 7종 가격을 최대 10% 인상하기로 했다. 코카콜라음료는 코카콜라를 비롯해 17개 품목의 출고 가격을 평균 4.8% 올렸다.
외식업계에선 식재료 값 인상에 인건비 부담까지 더해져 견디기 힘들다고 호소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박모(54)씨는 “식재료비는 큰 폭으로 올랐다가도 다시 안정세로 돌아올 것이란 기대가 있지만, 인건비는 올해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오를 것이 확실해 부담이 크다”고 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향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이 더욱 가중되면서 물가 인상 도미노 현상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했다.
업계에선 인건비 상승에 따른 비용 압박을 견디지 못한 자영업자들이 줄폐업하는 최악의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2020년까지 1만원을 목표로 지속적으로 최저임금을 올린다면, 수익 구조가 나쁜 식당들은 영업을 할수록 손해가 커지는 상황에 내몰린다는 것이다. 성태윤 교수는 “가난한 자영업자들에게 부담을 지워 더 가난한 종업원들 월급을 챙겨주겠다는 얘기”라며 “결국 자영업자들의 선택지는 메뉴 가격을 올리거나, 문을 닫는 것 두 가지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