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앞다퉈 자체 API 공개 핀테크기업 사업토대 마련해주고 서비스 공동개발로 사업 확장
2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의 'NH핀테크혁신센터'. 140평 규모의 센터에 핀테크(금융+기술) 업체 9곳이 입주해 있다. 이곳 입주 업체들은 모두 NH농협은행의 '오픈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를 이용해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오픈 API란 계좌 이체, 계좌 조회, 가상 계좌 관리 등 은행의 금융 서비스를 외부 기업이 인터넷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입주사 중 하나인 P2P(개인 간) 금융 업체 미드레이트도 2016년부터 농협은행의 API를 이용하고 있다. P2P 대출은 개인들이 투자한 돈을 모아 대출 업체에 입금해주고, 대출 업체가 돈을 상환하면 다시 개인들에게 돌려주는 사업이다. 그러나 미드레이트가 이런 자금 관리 시스템을 별도로 구축하고 관리할 필요는 없다. 농협은행이 P2P 금융 업체에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P2P자금관리 API'를 이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미드레이트는 "은행의 API를 활용하니 쉽게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API 공개로 핀테크와 손잡는 은행권
최근 시중은행들이 앞다퉈 API를 외부에 개방하며 핀테크 업체들을 끌어모으기에 나서고 있다. 간편 송금 스타트업인 '토스'를 비롯해 핀테크 업체들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가운데, 은행들이 견제·경쟁 대신 협력에 나서는 모양새다. 핀테크 업체들에 사업 토대를 마련해주고, 좋은 아이디어는 제휴를 통해 자사의 새로운 서비스로 키운다는 전략이다.
현재 농협과 KEB하나은행이 '오픈 API 플랫폼'을 구축하고 API를 개방했다. 신한금융지주, KB금융지주도 현재 그룹사끼리만 공유하던 API를 점차적으로 외부에 공개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지난 2015년 금융사 중에서 가장 먼저 API를 개방한 NH농협은행은 현재 119개의 API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활용해 핀테크 업체 20여 개가 사업을 하고 있다. 최근엔 핀테크 업체 수요에 따라 맞춤형 API를 만들어 제공하는 사업에도 나서고 있다.
지난 2월 초 API 공개를 시작한 KEB하나은행은 현재 40여 개 API를 제공하고 있으며, 앞으로 계속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업체 5곳이 하나은행 API를 이용하고 있는데, 추가로 20여 개 업체도 API 이용을 협의 중에 있다. 중국의 '차이나페이'라는 업체는 하나은행의 오픈 API를 이용해 중국에서 위안화로 국내 대학의 등록금을 납부할 수 있는 '유학생 등록금 수납 서비스'를 개발했다. 국내 80여 개 대학의 경우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환전 절차 없이 중국에서 바로 위안화로 등록금을 낼 수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핀테크 기업들은 은행이 제공하는 API를 이용해 아이디어를 좀 더 빠르게 비즈니스로 실현할 수 있고, 은행은 핀테크 기업들과 서비스를 공동 개발할 수 있게 됐다"며 "핀테크와 금융사의 '윈-윈'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금융지주는 API 외부 개방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올해 초 구성했고, 7월까지 '오픈 API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자체 개발보다 협력이 빠를 수 있어"
현재 은행들은 금융결제원이 운영하는 '은행권 공동 오픈 플랫폼 서비스'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 사업과 별개로 개별 API 공개에 나선 건 그만큼 적극적으로 핀테크 영역으로까지 생태계를 확장하기 위해서다. 한 은행 관계자는 "아무래도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는 성장성 있는 핀테크 업체와 협력하는 게 유리할 수 있다"고 했다.
당국도 핀테크 육성을 위해 API 공개 활성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금융위원회는 개별 금융사의 오픈 API 활성화를 위해 하반기 중 민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할 예정이다. 국내외 오픈 API 구축 사례를 조사하고 보안 점검 가이드 등을 마련해 지원해 나가기로 했다.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
새로운 앱 등을 쉽게 만들 수 있도록 구성된 프로그램 명령어들. 핀테크(금융+기술) 업체들은 각종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기존 은행의 '계좌 이체 API' '계좌 조회 API' 등을 활용하면 손쉽게 사업 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