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4.02 03:06 | 수정 : 2018.04.02 10:20

에너지·소재·산업재·금융 등 실적 비해 기업가치 저평가된 주식
4~5년 길게 보고 투자 필요한데 국내 투자자들 단기간 고수익 원해

가치주 펀드 기간별 자금 유출액
올해 유망 주식으로 평가받던 가치주(株)에 대한 시장 반응이 차갑다. 올해 40여 개 유형의 펀드 중에서 자금 유출액 순위면에서 가치주 펀드가 1위를 달리고 있다. 최근 1~2년으로 봐도 돈이 빠져나간 규모가 가장 크다. 가치주는 실적이나 자산에 비해 기업 가치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됨으로써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주식이다.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지만 보통 에너지, 소재, 산업재, 금융, 소비재, 유틸리티(수도·전기·가스) 분야에 속한 종목이 많다. 시장 전문가들은 가치주 펀드의 부진을 패시브 펀드의 인기, 길게 봐야 하는 가치주 투자 방식과 국내 투자 트렌드간의 불일치에서 찾는다. 패시브 펀드는 주가지수 등이 움직이는 데 따라 수익을 낼 수 있도록 만든 '소극적 펀드'다. 반대로 매니저가 적극적으로 종목을 발굴해 투자하는 펀드가 액티브 펀드다.

올해만 3900억원 빠진 가치주 펀드

다수의 시장 전문가들은 올 들어 가치주 예찬론을 폈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는 지난달 "4~5년 만에 가치주 투자하기에 유리한 국면이 도래했다"고 했고, '가치투자 전도사'인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는 올 초 "올해는 중소형 가치주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도 작년 말 보고서에서 "관심을 대형 성장주에서 가치주와 중소형주로 옮겨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은 전문가들의 전망과는 반대로 움직였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96개 가치주 펀드에서는 3900억원이 빠져나갔다(3월 29일 기준). 40여 개 유형의 펀드 중 유출 규모가 가장 크다. 가치주 펀드 중 자금 유출 1위는 'KB밸류포커스증권자투자신탁(주식)(운용)'으로 1590억원이 한 분기 만에 빠졌다. 가치주에 대한 시장의 냉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1년, 2년으로 기간을 늘려서 봐도 가치주 펀드의 자금 유출 규모는 가장 크다. 각각 2조5000억원, 6조9000억원가량이 유출됐다.

가치주, 길게 보고 자산 일부 투자

가치주 펀드 부진의 가장 큰 이유로 전문가들은 액티브 펀드의 인기가 시들해진 것을 꼽는다. 액티브 펀드는 품이 많이 들고, 고도의 분석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패시브 펀드보다 수수료를 많이 받는다. 하지만 최근 1~2년간 수익률은 오히려 패시브 펀드에 뒤질 때가 많았다. 저평가된 종목을 매니저가 발굴해 돈을 굴리는 가치주 펀드에 대한 불신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삼성증권 이재승 투자정보팀장은 "지난해 글로벌 증시 전체가 활황세를 보이면서 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의 수익률이 크게 올라가다 보니 오히려 액티브 펀드의 성과가 저조해 보이는 일이 생겼다"고 말했다.

올해 가치주 펀드 중 자금 유출액 상위5
여기에 대박만을 노리는 한국 특유의 투자 트렌드도 가치주 펀드 홀대에 한몫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투자자들은 기대 수익률이 너무 높고, 오래 기다리는 투자를 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가치주 투자가 단기간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상품 대비 저조한 수익률에 실망해 금방 돈을 뺀다는 것이다. 올해 가치주 펀드 평균 수익률은 -1.8%를 기록해 부진한 편이다. 1~2년 수익률도 각각 9%, 8.6% 정도에 불과하다. 1~2년 수익률이 수십 %에 달하는 IT·헬스케어 펀드 등 '핫'한 상품들과 비교하면 저조한 편이다. IT 펀드의 경우, 최근 2년간 수익률이 67%로 가치주 펀드의 8배가량 된다. 한국투자증권 김대준 연구원은 "가치주는 시세차익을 먹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성장을 따라가는 주식"이라며 "4~5년 이상 길게 가져간다는 생각을 하고 투자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투자 가능한 자산의 일부를 장기 투자로 묶어둘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예컨대 1000만원을 쓸 수 있다면 이 중 200만~300만원 정도는 가치주 펀드에 넣고 나머지 700만~800만원은 IT나 헬스케어 등 단기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상품에 넣으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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