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5명 수업중인 초등학교가 뚫렸다

정신 질환을 가진 20대가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들어가 여학생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였다. 범인은 경찰과 1시간 대치 끝에 붙잡혔고, 여학생은 무사했다. 흉기를 소지한 외부인은 대낮 수업 중인 학교에 별다른 제지 없이 정문으로 진입했다. 괴한이 학교에 침입해 학생을 위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학교 안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흉기 들고 1시간여 대치… 학생은 무사

2일 오전 11시 30분쯤 양모(25)씨는 서울 서초구 방배초등학교에 들어섰다. 그는 뇌전증(간질) 장애 4급 판정을 받았다. 정문을 지키는 '학교 보안관'에게 "이 학교 졸업생이다. 졸업증명서를 떼러 왔다"고 했다. 신분 확인 없이 정문을 통과한 양씨는 3분 후 교무실로 들어갔다.

당시 교무실에는 쉬는 시간에 물품을 가지러 온 학생 6명과 여교사 1명, 실무사(사무 보조원) 1명이 있었다. 양씨가 4학년 여학생(10)을 붙잡고 과도를 들이대며 인질극을 벌였다. 학교 관계자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 테니 아이를 놔 달라"며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는 "억울하다. 기자를 불러 달라"고 했다. 학교 측은 방송을 통해 학생들을 교실 안에 머무르게 하고, 창문 커튼을 치게 하는 등의 조치를 했다. 오전 11시 50분쯤 경찰이 도착하면서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 그는 "군대에서 정신병을 앓았는데, 국가 유공자 신청을 안 받아줘 불만이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현장에서 몇 차례 간질 증상을 보였다. 낮 12시 45분쯤 경찰은 양씨에게 여학생한테 우유와 빵을 주도록 해 흉기를 내려놓게 했다. 경찰은 그가 빈틈을 보인 순간 제압해 체포했다. 양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은 후 경찰로 이송됐다. 그는 방배서에 도착해 "군대에서 가혹 행위와 부조리, 폭언, 질타, 협박 등으로 정신 질환이 생겼다"며 "전역 후 국가보훈처에 계속 보상을 요구했는데 어떤 보상도 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양씨에게 붙잡혔던 여학생은 별다른 외상은 없었으나 병원으로 옮겨져 심리 검사를 받았다.

◇구멍 뚫린 초등학교 정문

 

이날 학교 교문에는 '학교 보안관'이 지키고 서 있었다. 학교 보안관은 범죄 예방과 등·하교 교통안전 지도, 외부인 출입 통제 등을 한다. 이 학교에선 두 명이 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양씨는 "졸업증명서를 떼러 왔다"고 하며 무사히 교문을 통과했다. 신분 확인이나 출입을 기록하는 절차는 없었다. 학교 관계자는 "원래 민원인한테 신분증을 받아야 하지만, 졸업생이라고 하고 젊어서 보안관이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실제 방배초등학교 졸업생이었다.

학생과 교직원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방배초에는 교직원 77명이 근무하고 995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교문에서 만난 한 학부모(여·36)는 "학부모가 모인 단톡방에 뉴스를 공유하며 다들 불안에 떨었다"며 "무서워서 어떻게 아이를 학교에 보내겠느냐"고 말했다.

학교에 괴한이 들어온 일은 이전에도 있었다. 2010년 6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김수철이 여학생(당시 8세)을 납치해 학교에서 500여m 떨어진 자신의 집에서 성폭행했다. 2014년에는 전남 영암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60대 남성이 여자 어린이 4명을 잇따라 성추행하기도 했다.

 

원칙적으로 외부인이 학교에 들어올 때는 신분증을 확인하게 돼 있다. 하지만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학교 보안관은 "특별히 이상한 사람이 아니면 불쾌감을 줄 수 있어 신분을 캐묻지는 않는다"고 했다. 일부 신도시 학교는 운동장을 주민 편의 시설로 개방하면서 담장을 없앴다. 정문이 아닌 곳으로도 외부인이 쉽게 드나들 수 있다. 전문가들은 외국처럼 외부인의 학교 출입을 엄격히 통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과 유럽에선 학교 관계자와 미리 약속을 하지 않은 외부인은 비록 학부모라도 출입하지 못하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