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책가도'와 K팝에 미국 청년들이 반했죠"

지난해 10월,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미술관'이 K팝으로 들썩였다. 책장 안에 책과 도자기, 문방구 등을 진열해 놓은 장면을 그린 조선시대 '책거리' 전시와 함께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행사가 열렸다. '한국의 밤'을 즐기기 위해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은 무려 2000여 명. 이들은 전시를 본 뒤 K팝에 맞춰 춤을 췄다.

클리블랜드 미술관에 한국 문화의 장(場)이 마련된 건 한국과 사랑에 빠진 클리블랜드 미술관장 윌리엄 그리스워드(57) 덕이다. 국제교류재단 초청으로 지난주 서울에 온 그리스워드는 "매번 경유지로 몇 시간만 머물던 한국에 드디어 오게 됐는데, 정말 매력적인 곳"이라며 활짝 웃었다.

클리블랜드 미술관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보스톤 미술관 등과 함께 미국 5대 미술관으로 꼽힐 만큼 다양한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이다. 고대 이집트 미술부터 20세기 회화, 조각, 공예 등 여러 분야 예술품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아시아 미술 부문에서 강세를 보인다.

한국 미술에도 관심이 많다. 2013년에 문을 연 한국 전시관에는 고려시대 공예품, 조선시대 회화, 19세기 책거리 등 460점 넘는 작품이 있다. 2015년 한국인 큐레이터를 영입해 대원군 이하응, 이택균의 작품 등을 가져왔으며 현재 한국 장례 문화와 여성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는 기획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우리 미술관의 큰 지지자 중 한 명이 서울 세브란스병원을 지은 클리블랜드 출신의 세브란스 일가"라며 "이 같은 인연으로 미술관이 문을 열기도 전인 1915년부터 꾸준히 한국 예술품을 들여오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 미술에서 현대미술까지 영역을 넓혀 한국의 미(美)를 다양하게 알리는 게 제 역할입니다."

변호사 가정에서 자랐지만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미술사를 전공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미술관 다닌 경험이 제 미래를 통째로 바꿨지요." 그래서 젊은 관람객을 미술관으로 부르기 위해 노력한다. "문화·예술계뿐 아니라 이 세상을 이끌어 갈 리더들은 다양한 시대, 문화권의 예술과 역사를 접해야 하니까요." 책거리 전시 일환으로 열린 K팝 행사도 젊은 세대를 미술관으로 이끌기 위한 수단 중 하나였다. "미술관은 젊은이들의 상상력을 이끌어 내는 동시에 즐거움을 선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도 작품을 볼 순 있지만, 실물과 이미지는 전혀 다른 경험을 제공합니다. 예술품의 질감, 크기, 뭣보다 작품이 내뿜는 아우라는 실물을 봐야만 느낄 수 있지요." "죽을 때까지 클리블랜드 미술관에 있겠다고 서약했다"는 그리스워드는 "우리 미술관을 통해 더 많은 한국 문화와 인연을 맺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