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부터 일본과 러시아를 돌며 공연장마다 다른 바흐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강행군을 펼쳤다. "음악가 삶이 이래요. 연습과 연주, 여행의 연속이죠." 국내에는 낯선 연주자이지만 세계 클래식 시장에서 그는 '바흐의 연금술사'로 통한다. 여섯 살에 모스크바 그네신 음대에 들어가 피아노를 배운 영재. 열세 살에 발매한 첫 바흐 음반(데논)으로 에코 클래식상을 받았고, 1996년 발표한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데논)으로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다. 2015년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오르페오)을 또 한 번 선보이면서 바흐를 향한 무한한 애정을 발휘했다.
"왜 바흐냐"고 묻자 "바흐는 무수한 인간 군상이 열연을 펼치는 거대한 극장. 왼손엔 희극, 오른손엔 비극을 쥐고 영원히 끝나지 않는 드라마를 우리에게 보여준다"고 했다. "규모가 큰 바그너, 화려한 리스트에 비하면 바흐는 작고 단순하죠. 하지만 인류의 모든 감정을 압축했기 때문에 듣는 이의 심장을 강타해요."
리프시츠는 "이번 일본 투어에서 전통 가면극 노(能)의 배우인 다쓰미 안지로를 만났다. 언젠가 내 반주로 노 춤을 추기로 뜻을 모았다"며 웃었다. "바흐는 전해 내려오는 전통이 따로 없어요. 베토벤만 해도 자신이 직접 연주했기 때문에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지 전례가 남았지만 바흐는 그런 게 없거든요." 19세기엔 바흐를 멘델스존처럼 낭만적으로, 20세기엔 전자음악같이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모든 연주법이 통용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바흐는 전부 아니면 전무.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악상이 떠올라 멈출 수 없죠. 그래도 사람인지라 가끔 싫증이 나면 '럭키'와 뛰놀아요. 아내와 결혼하면서 기른 강아지인데, 내가 자길 만난 게 행운이라나요? 하하!"
리프시츠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두툼한 손이 한순간 열 손가락을 쭉 뻗으며 건반에 달라붙었다. 그의 손은 이내 건반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콘스탄틴 리프시츠 Piano=5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 (02)6303-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