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주식시장에서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의 등장으로 현대차와 기아차 그리고 자동차 부품 계열사인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 그룹 계열사 주가가 3% 안팎씩 크게 올랐다. 이날 엘리엇은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3개사 보통주를 10억달러(약 1조500억원)어치 이상 보유하고 있다"며 "앞으로 진행될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겠다"고 발표했다. 증시에선 엘리엇이 주주 이익을 요구할 것이고, 현대차가 이를 수용할 것으로 기대해 현대차 계열사 주가가 상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엘리엇은 3년 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며, 국내 최대의 삼성그룹 지배구조를 뒤흔든 바 있다. 이번에 국내 2위 대기업인 현대차그룹을 타깃으로 정한 것은 지난달 28일 발표된 지배구조 개편안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를 최상위 지배회사로 만들어 'A→B→A'식의 계열사 간 순환출자를 해소하겠다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놨다.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에 "기업 경영구조 개선, 자본 관리 최적화, 주주 환원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에 대한 세부적인 로드맵을 공유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엘리엇 등장에 현대차그룹 주가는 상승
이날 증시에서 현대모비스는 3.52%, 물류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는 3.01%, 현대차는 2.96%, 기아차는 2.52%씩 상승 마감했다. 엘리엇의 요구로 현대차그룹이 주주 이익을 더 높이는 방책을 내지 않겠냐는 기대감에 매수 자금이 대거 유입됐기 때문이다. 2015년 엘리엇이 삼성그룹을 공격할 때도 엘리엇이 7% 지분을 보유한 삼성물산 주가는 이틀간 20% 넘게 뛰었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배당 확대 등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가 상승한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선 현대차그룹 구조 개편안으로 이익을 보지 못한 엘리엇이 '주가 띄우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현대차 발표 전까지는 현대차그룹이 계열사인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를 투자와 사업 부문으로 분할하고, 투자 부문을 합병해 지주회사 체제로 갈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 때문에 많은 투자자들이 지주회사가 설립되면 주가가 오를 것을 기대하면서 이 3개 회사 주식을 주로 샀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를 지주회사가 아닌 최상위 지배회사로 만드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그리고 부품 계열사인 현대모비스의 핵심 사업인 '모듈(부품 덩어리)과 AS 부품 사업' 부문을 물류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에 넘기는 것을 추진한다고 했다. 이렇게 되자 현대모비스 주가는 지주회사가 될 때에 비해 덜 오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이사는 "투자자들은 현대모비스의 사업부를 가지고 가는 현대글로비스의 주가 상승이라도 기대했지만, 이마저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재계 관계자는 "엘리엇은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계속 이슈를 만들고 시끄럽게 해서 현대차그룹에 무슨 일이 있는 것처럼 만들어 주가를 높이려는 전략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엘리엇, 판 깨나
이번 엘리엇의 공세는 3년 전 삼성그룹 공격 때와 달리 보유 지분도 적고 공세(攻勢) 강도도 낮다. 엘리엇은 현대차그룹 3사의 주식 약 1조500억원어치를 들고 있다고 했는데, 이는 3사 전체 시가총액(73조4154억원)의 1.4%에 불과하다(4일 종가 기준).
삼성그룹 공격 때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을 7% 넘게 보유해 국민연금, 삼성SDI에 뒤이은 3대 주주였다. 과거 엘리엇은 소송을 불사하며 합병 판 자체를 뒤엎으려 했다. 하지만 이번엔 지배구조 개편 자체에 대해선 “환영한다”고 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엘리엇이 분할·합병을 반대하기보다 배당 확대, 주식 소각 등 주주 이익을 높이는 방안을 요구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엘리엇은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간 분할·합병이 오너 일가의 지배구조 강화가 아닌 주주 이익에 어떤 면에서 이득이 되는지 등을 아주 구체적으로 물으면서 배당 확대 등 주주 환원 정책을 강력히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별 보유 지분에 따라 전면전 가능성도
하지만 일각에선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서 꽤 애를 먹을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현대모비스가 캐시카우(현금 창출원)인 ‘모듈과 AS부품 사업’ 부문을 떼내 현대글로비스에 합병시키는 작업에 엘리엇이 반기를 들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 합병 비율은 0.61대1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 현대모비스 주주들은 이 비율이 현대모비스에 불리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송선재 하나금융투자 팀장은 “엘리엇이 현재 구체적인 보유 지분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는데, 만약 현대모비스 지분이 많다면 엘리엇이 어떻게 나올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지배구조 개편안이 모든 주주에게 이익이 된다고 설명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투자자들에게 분할·합병으로 현대모비스는 첨단 기술을 선도하는 지배기업 역할을 하고, 현대글로비스는 사업 효율성을 높이며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