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4.04 23:53

한국선 찾기 힘들어졌지만… 베트남서 코카콜라 제치고 1위
박카스는 캄보디아 국민음료… '각성보다 피로회복' 취향 맞아

1999년 출시된 웅진식품 '아침햇살'은 2000년대 초반 '초록매실'과 함께 콜라·사이다의 아성을 위협할 정도로 국민적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후 각종 커피·차·탄산음료가 등장하며 소매점 매대에서 점점 그 모습을 찾기 어려워졌다. 한국 소비자의 기억에서 점점 흐릿해지던 아침햇살은 최근 베트남에서 '부활'했다. 웅진식품에 따르면 2014년 베트남 판매에 들어간 아침햇살은 지난해까지 연평균 104% 고속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이마트 베트남 고밥점의 음료 부문 매출 순위에선 코카콜라·포카리스웨트·레드불 등 쟁쟁한 글로벌업체 제품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베트남의 한 대형마트에서 현지 고객들이 매대에 진열된 웅진식품의 쌀음료 모닝라이스를 살펴보고 있다. 이 음료는 2000년대 초반 국내에서 많이 팔리던 쌀음료 아침햇살. 최근 베트남 젊은 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베트남의 한 대형마트에서 현지 고객들이 매대에 진열된 웅진식품의 쌀음료 모닝라이스를 살펴보고 있다. 이 음료는 2000년대 초반 국내에서 많이 팔리던 쌀음료 아침햇살. 최근 베트남 젊은 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웅진식품

유통업계에 따르면 아침햇살이 베트남에서 선전하는 이유는 베트남인들이 즐겨 마시는 전통 음료 '쩨'와 맛이 유사하면서도 고급스럽기 때문이다. '모닝라이스'란 이름으로 판매되는 아침햇살의 베트남 소매가(1.5L 기준)는 3000~4000원으로 같은 용량 코카콜라(약 680원)의 5배이지만, 고소득층·젊은 층을 중심으로 '고급스럽고 안전성이 입증된 쩨'로 여겨지며 인기를 끌고 있다.

동남아에서 부활

국내에서는 인기가 식었거나, 다양한 신제품과의 경쟁에 뒤처지며 점유율을 잃어가던 식품업계의 '슈거맨'(한때 인기를 누리다 잊힌 가수를 지칭하는 표현)들이 동남아를 비롯한 해외 시장에서 약진하고 있다.

정식품의 베지밀도 베트남 시장에서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베지밀은 2014년 베트남 시장에 진출한 후 연평균 415%씩 고속 성장하고 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며 건강 음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쌀·콩 곡류 가공음료뿐이 아니라 알로에 음료 제품 동남아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음료업계 관계자는 "본래 동남아와 중남미가 원산지인 알로에는 체온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어 열대 기후 지역에서 인기지만, 자국 제품들에 비해 알로에 함량이 높고 품질이 우수한 한국 제품들이 고급 제품으로 분류돼 인기다"고 했다.

 

베트남 이마트의 음료 매출 순위표
캄보디아에선 박카스가 '국민음료'로 불린다. 동아에스티에 따르면 2011년 52억원이던 캄보디아 박카스 매출은 지난해 626억원으로 5년 만에 12배 가까이 성장했다. 태국계 에너지드링크업체 '레드불'이 장악하고 있는 동남아 시장에서는 이례적인 현상이다. 동아에스티 관계자는 "고카페인 각성 음료에 비해 피로 해소를 돕는 타우린 성분이 많은 한국식 자양강장제가 동남아인들의 취향에 더 적합했던 것"이라며 "'박카스 마시고 힘내서 일하자'는 한국의 1970~80년대 사회 분위기와 지금의 캄보디아가 맞아떨어진 것도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현지화 노력은 더 해야

전문가들은 국내 식음료업계가 해외 시장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선 현지화를 위한 노력을 더 기울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라면 '원조' 삼양식품은 최근 오뚜기에 2위 자리까지 내주며 추락했지만, 지난해 해외 수출액 2000억원을 돌파하며 경영실적이 크게 개선됐다. 전년(931억원) 대비 120% 성장한 수치다. '불닭볶음면'이 인도네시아에서 큰 인기를 누려서다. 매운맛이 인도네시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삼양식품이 국내 최초로 인도네시아 울레마협의회(MUI) 할랄 인증을 받는 등 무슬림 시장을 공략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2000년대 들어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동서식품 프리마의 경우 국가별 소비자들의 취향을 반영한 레시피 개발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실제 러시아에서는 프리마를 코코아나 차에 타서 마시거나 빵이나 요리에 넣는 재료로 사용하고 있고, 카자흐스탄에서는 홍차에 넣어 마시는 재료로 활용되게끔 현지화를 추진했다.

이준 산업연구원 소재·생활산업연구실장은 "그동안 식음료 산업은 내수산업으로만 치부돼 성장이 멈춘 국내 시장에서 업체끼리 '치킨게임'을 벌이는 형국이었다"며 "식음료업계가 일부 제품의 반짝 인기에 그치지 않고 해외 시장을 넓히려고 현지인들의 문화와 입맛에 맞게 제품 현지화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선일보 조선닷컴

시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