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2016년 태권도휴먼재단 설립해 요르단 난민캠프서 청소년 교육
1일 태권도아카데미 정식 개관 "세계 챔피언도 여기서 나올 것"
"아이들 눈빛을 보면 절대로 외면 못 합니다. 전쟁과 분쟁에 시달리는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스포츠는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5일 세계청소년태권도대회가 열리고 있는 튀니지에서 전화를 받은 조정원(71) 세계태권도연맹(WT) 총재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그는 나흘 전 인천공항을 떠나 21시간 비행 끝에 요르단에 도착해 아즈락의 시리아 난민 캠프 태권도 아카데미 준공식에 참석한 뒤 튀니지로 건너왔다고 했다.
조 총재는 "요르단을 떠난 지 몇 시간도 안 됐는데, 난민촌 아이들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고 했다. 집도, 가족도 없이 절박한 삶을 살아가는 난민촌 청소년들을 보다가 정식 대회에 출전해 실력을 뽐내는 청소년들을 만나니 복잡한 생각이 든다는 얘기였다.
그래도 조 총재는 "난민 캠프에서 태권도를 배우는 아이들을 보면 참 행복하다"고 했다. "난민 캠프 아이들이 '백발의 태권맨 조(조정원 총재)가 나타났다'며 저를 둘러싸면 정말 기분이 좋다"면서 "6·25전쟁 당시 초콜릿을 던져주던 미군들이 떠오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세계태권도연맹과 태권도휴먼재단(THF)은 2016년 4월부터 3만2000여명이 수용된 요르단의 시리아 난민 캠프 내 임시 건물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태권도를 가르쳤다.
1년 동안 한국인 사범을 파견해 토대를 마련한 뒤 올해부턴 요르단 사범을 두었다. "태권도가 난민 청소년들 사이에 최고 인기 스포츠가 됐어요. 100명쯤 되는 5~15세 아이들이 매일 도장을 찾아옵니다."
조 총재는 난민 청소년들이 희망을 가지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태권도를 배울 수 있도록 작년 12월 태권도 아카데미 공사를 시작해 지난 1일 문을 열었다. 단층 건물에 전용 도장과 교실, 탈의실, 진료실, 카페 등 편의 시설을 갖췄다. 개관식에 요르단태권도협회장을 맡고 있는 라시드 빈 엘 하산 요르단 왕자가 참석하는 등 요르단 정부의 관심도 컸다.
조 총재는 "난민 캠프에서 작년 11월 첫 유단자가 나왔다"며 "아카데미를 정식으로 열었으니 조만간 세계 챔피언, 올림픽 챔피언도 나올 것"이라고 했다.
세계태권도연맹은 태권도를 통해 전 세계 난민 캠프 및 분쟁·재해 지역 청소년을 지원하기 위해 2016년 태권도휴먼재단을 설립했다.
"CNN 방송에서 시리아 난민 어린이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는 뉴스를 봤지요. 마치 정통으로 얼굴을 가격당한 듯한 기분이었어요.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더군요."
요르단과 터키의 시리아 난민 캠프, 지진 피해를 입은 네팔과 이탈리아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진행해오던 '태권도를 통한 치유·희망 프로그램'을 재단 설립을 계기로 본격화했다. 조 총재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신설한 올림픽난민재단(이사장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의 이사로 선출되기도 했다.
조 총재는 "유엔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난민이 6300만명이고, 이 중 2200만명이 전쟁 난민"이라며 "UNHCR(유엔난민기구)과 함께 아즈락 태권도 아카데미 같은 성공 모델을 아프리카와 남미에 적용할 예정"이라고 했다. "난민 캠프 청소년들이 태권도를 통해 삶의 희망을 이어가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어렸을 때 배운 건 평생 가잖아요. 태권도를 배우면 한국과 한국 문화를 알게 될 것이고, 성인이 되면 지한파(知韓派)가 될 것"이라며 "결국 스포츠 한류(韓流)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