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4.06 04:00 | 수정 : 2018.04.06 15:38

[뮤지션 선우정아]

복면가왕 5연승 '레드마우스'

파격적인 편곡으로 '원곡 사냥꾼'이란 별명 얻어
아이유·유희열도 팬 자처하는 '뮤지션들의 뮤지션'
"쉴 땐 영화 감상… '트랜스포머' 보고 곡도 만들었죠"

"오 가쉬(gosh), 문제야/맞아 난 좀 기분파/헤 금방 또 사랑에 빠져/예 예 예 예~"

지난 2월, MBC 음악 경연 프로그램 '복면가왕'에서 흘러나온 곡 '피카부(Peek-A-Boo)'가 시청자들의 안방을 놀라게 했다. 원곡은 걸그룹 '레드벨벳'이 부른 경쾌한 댄스곡. 그러나 화면 속 붉은 입술 형상의 가면을 쓴 정체불명의 가수 '레드마우스'는 한 템포 느릿한 재즈 편곡에 허스키한 음색의 스캣(즉흥노래)을 끈적하게 섞었다. "주문 거는 듯한 목소리에 홀리네!"란 반응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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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가늘게 오래도록 음악을 하고 싶어요.” 홀려 들어갈 것만 같은 감미로운 허스키 보이스로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가 말했다. / 매직스트로베리 사운드

이 방송 출연 동안 레드마우스는 블랙핑크 '휘파람', 영화 아저씨의 OST '디어' 등을 자신만의 색깔로 완벽히 소화하며 5연승 했다. 파격적인 편곡으로 '원곡 사냥꾼'이란 별칭까지 얻었다. 그의 정체는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33).

최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만난 그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했다. 이날도 밤늦게까지 가득 찬 스케줄 사이 겨우 짬을 내 만났다. 그러나 "여전히 자주 신인으로 오해받는다"고도 했다. '복면가왕' 전엔 방송 대신 공연 활동만 했기 때문이다. 데뷔 12년 차. 아이유, 유희열 등 많은 아티스트가 팬을 자처하는 '뮤지션들의 뮤지션' 선우정아를 만났다.

―'복면가왕'은 어떻게 출연했어요?

"사실 전에는 예능 출연에 부정적이었어요. 제 음악을 변질시킬까 봐서요. 최근에는 활동 영역을 넓혀볼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때마침 섭외가 왔고, 시기가 잘 맞았죠."

―왜 '레드마우스'예요?

"제작진이 저에 대한 정보도 기대도 별로 없었나 봐요(웃음). 가면도 정말 천 정도의 수준이었고. 그냥 여자 가수고 노래 잘한다니깐 '빨간입술'로 정한 듯해요. 연승 후 '왜 그랬냐' 놀리니 좀 미안했는지 가면에 보석을 붙여주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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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가왕’에 ‘레드마우스’로 출연한 모습. 5연승을 거뒀다. / MBC
―노래할 때 '주술 거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많아요.

"스스로도 '어지간히 자기 색 강하구나' 생각해요. 곡 녹음 때마다 절대 오버 않으려고 해요. 나중에 듣고 너무 튀어서 기겁할 때도 있거든요. 어릴 땐 이정현, 임상아 등 강한 여전사 이미지가 많았는데 요새는 많이 사라져서 제가 더 세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소매 긴 옷을 좋아해 자주 입거든요. 그걸 흔들며 노래하는 모습은 제가 봐도 정말 살풀이 같긴 해요(웃음)."

―무대 체질인가 봐요.

"정말 많이 떨어요. 티 안 나게 떠는 노하우가 쌓였을 뿐. 걱정도 많고 컨디션도 들쭉날쭉. 의외로 민감한 보컬이에요."

―'허스키 보이스에 반했다'고들 해요. 1집 때에 비해 갈수록 목소리가 많이 성숙해지는 듯해요.

"솔직히 성대가 많이 늙었어요, 하하. 나이 먹을수록 성대는 점점 두꺼워지고 소리가 변해서 관리를 잘 해줘야 해요. 물론 쌓인 무대 경험만큼 호흡에 무게감과 여유도 좀 생겼어요."

―아이돌 곡 편곡을 많이 선보였어요. YG에서 투애니원·지디&탑 등과 작업한 영향도 있는지.

"아이돌 곡 자체를 좋아해요. 25세 때 YG에서 투애니원 '아 돈 케어' 레게믹스로 프로듀서로 입봉했어요. 한 아이돌 타이틀곡에 얼마나 많은 프로듀서가 음악적 재능을 쏟아붓는지 봤어요. 이걸 나만의 스타일로 편곡해 부르면 더욱 파격적인 재미를 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요새 정말 '핫'해졌는데.

"전엔 드라마 OST 맡으면 엄마한테 '나 가수도 연예인도 아니니 지레 좋아하지 마' 면박 주고 그랬어요. 기대했다가 실망하실까 봐. 요새는 마음껏 '자랑해'라고 말해요(웃음). 큰 욕심 없이 딱 오래 음악할 수 있을 만큼의 인기를 꾸준히 이어가고 싶어요."

―싱글곡 '남'을 발매했어요.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심정? 꼭 연인 간이 아니더라도 가족의 죽음 등 살면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이별 감정을 담아보고 싶었죠. 그 상실감이 개인의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표현이 야속하지만 또 어쩔 수 없는 사실이잖아요. 그걸 덤덤하게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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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자주 신인으로 오해받는다"는 선우정아. '복면가왕' 전엔 방송 대신 공연 활동만 했기 때문이다./매직스트로베리 사운드
―쓰는 데만 8년 걸렸다면서요.

"곡 뼈대는 이미 2010년에 완성했는데 가사는 올해 완성했어요. 정규 2집 수록곡 '비온다'도 그랬죠. '좀 더 어른이 되면 써야지' 하면서 8년 걸려 완성했어요. 살아봐야만 쓸 수 있는 표현이 있다고 생각해요. 1년 전 쓴 이별 가사와 그동안 숙성된 지금의 이별관을 비교해보면 전혀 달라요. 일상 중 휴대폰 메모를 자주 해요. 생활의 조각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 순간 완성된 곡과 가사로 툭 나오더라고요."

―PC 통신으로 음악을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중학교 때 HOT 팬이었어요. 이런 음악은 어떻게 만드는 건지 궁금했죠. 혼자 기타 치고 궁리하니깐 아버지가 작·편곡 미디프로그램 책을 사다주셨어요. 그걸로 작곡 공부를 하다 이해 안 가는 건 천리안·나우누리의 음악 동호회 어르신들께 많이 물었어요. 사진 주고받는 기능은 없을 때니깐 채팅으로 알려주시면 손으로 일일이 받아 적고. 덕분에 나온 전화 요금 폭탄은 성적 유지한다는 조건으로 면제받았고요."

―연주자 남편과 11년 연애하고 2012년 결혼했는데.

"남편은 '제 삶의 멘토'예요. 같은 뮤지션인 만큼 서로 심한 감정 기복이나 뒤틀린 생활방식을 잘 이해해 주죠. 결혼 후 사랑과 이별에 대해 더 다양한 시각으로 보게 됐고요. 곡 쓰는 데도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뮤지션들의 뮤지션'으로 불려요.

"부담스러워요. 뒤집어 말하면 '대중들에게는 잘 안 알려진'이란 수식어이기도 하고."

―쉬는 날도 음악 들으며 지내나요?

"전혀요. 쉴 때는 전혀 소리를 안 들으려고 해요. 비워내야만 또 새로운 음악으로 채울 수 있으니까. 예능이나 영화를 즐겨 봐요. '아이언맨'같이 때려 부수고 새로운 걸 탄생시키는 액션 판타지에 영감을 많이 받아요. 곡 '삐뚤어졌어'는 '트랜스포머' 보고 영감 받아 작업한 곡이에요."

―어떤 뮤지션이 되고 싶은지.

"훌륭한 음악가들이 자꾸 절명(絶命)하잖아요. 영화 속에선 멋있어 보여도 현실에선 너무 아픈 삶 같아요. 음악을 평생 하고 싶지만 음악에 잡아먹히고 싶진 않아요. '음악인으로 태어난 사람' 대신 '살면서 음악 하는 사람'이 될래요."

선우정아 프로필

1985 서울 출생

2008 동아방송예술대 영상음악 계열 졸업

2006 정규 1집 'Masstige'로 데뷔

2013 정규 2집 'It's okay, dear' 발매

2014 제11회 한국대중음악상 종합분야 올해의 음악인상

2017~2018 MBC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 출연, 5연승 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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