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전 11시쯤 전남 해남군에 있는 대한조선. 축구장 4개짜리 넓이의 선박 건조장 독(dock) 안에서 길이 250m, 높이 20m짜리 유조선 한 척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수십명의 근로자들이 배 위를 바쁘게 오갔고, 선체 곳곳에서 용접하는 불꽃이 튀었다. 쇠를 갈아내는 소리가 조선소 전체에 윙윙거리며 울렸다. 독을 가리키며 박용덕 대한조선 사장이 말했다. "저기에 지역 경제 1만명의 생계가 달려 있습니다. 지금은 허리띠 졸라매는 게 힘들지만 끝까지 버텨야 기회가 온다고 생각하며 다 같이 한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연매출 5000억원 안팎 규모의 대한조선은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재기에 성공한 대표적인 중형 조선사이다. 원래 대주그룹 계열사였는데 2009년 이후 글로벌 금융 위기, 조선업 경기 침체 등으로 워크아웃과 법정관리를 잇따라 겪었다. 하지만 2015년 말 법정관리를 졸업한 후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
대한조선과 함께 중견 조선사로 분류되는 성동조선과 STX조선해양이 적자에 허덕이며 법정관리에 들어가거나 법정관리 위기에 처한 것과 대조적이다. 대한조선은 2016~2017년 2년 연속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잇따라 배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들어오면서 내년 말까지 일감이 가득 차 있다. 올해도 연초부터 수주 소식이 이어지는 중이다.
◇선제적 구조조정과 유연한 고용
◇적기에 과감한 구조조정이 핵심
정상화에 성공한 대한조선과 법정관리 기로에 선 STX를 가른 결정적 요인은 선제적인 구조조정 여부였다. 대한조선이 구조조정을 통해 다시 일어선 반면 STX조선은 부실 징후가 뚜렷했던 2014~ 2016년 전후 경영진과 채권단이 과감하게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아 위기를 자초했다는 분석이다. STX조선은 당시 정치권에서 구조조정에 개입하고, 지역 경제와 눈앞의 일자리를 지나치게 의식해 연명에만 급급했다는 비판이 많다.
뒤늦게나마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STX조선 사측은 고정 비용 40%를 감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 경영 정상화 방안을 마련해 노조와 협상 중이다. 생산직 근로자 약 700명 중 100명은 희망퇴직시키고, 400명은 하도급 업체에서 일하게 하자고 제안했다. 3년 고용과 종전 임금의 80% 보장이 조건이다. 또 LNG·LPG선 등 경쟁력이 있는 고부가가치 상품 쪽에 집중하자는 계획도 냈다. 정부·채권단은 9일까지 노조가 이 계획에 동의하지 않으면 STX조선의 법정관리행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그러나 고용 보장이 더 중요하다고 반대한다. 산업은행 고위 관계자는 “직원들도 고통스럽겠지만 지금 구조조정을 통해 효율화에 성공하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며 “그렇지 않으면 전체 일자리가 사라질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