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서부 오르테즈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뒤카스는 "할머니가 콩을 너무 익혔다고 불평할 정도로" 어려서부터 입맛이 예민했다. 16세 때 요리사로 수련을 시작해 24세에 총주방장을 맡을 만큼 일찌감치 재능을 드러냈다. 하루 4시간밖에 자지 않고 일해 '로보-셰프(Robo-chef)' '일 중독자'라 불리던 그는 28세이던 1984년 미쉐린 가이드로부터 별을 2개나 받았다.
승승장구하던 뒤카스는 그해 남미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했다. 그는 유일한 생존자였다. 1년 동안 누워 있어야 했던 그는 병상에서도 레스토랑을 지휘했다. 그는 이때를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라고 했다. "일을 아랫사람들에게 위임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식당에 있지 않아도 식당을 지휘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전 세계 업장들을 경영할 수 없었을 겁니다."
더 이상 주방에서 요리하지 않는 그는 자신을 "축구 감독"에 비교했다. "축구 감독은 한때 최고의 공격수나 미드필더, 수비수였겠지만 실제 경기를 뛸 수 있는 실력은 더 이상 없겠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요리사가 갑자기 부족할 때 대신 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요리사들의 테크닉을 따라갈 순 없어요. 제 역할은 새로운 메뉴를 창조하고 요리사들을 키워내는 겁니다. 저에게 이제 요리는 집에서 가족이나 친구들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뒤카스의 레스토랑은 미쉐린 가이드에서 최고 등급인 별 3개를 받은 프랑스 파리 '플라자 아테네'와 모나코 '루이 15세', 런던 '도체스터'가 대표적이다. 일본 도쿄에도 별 1개를 받은 '베누아'가 있다. 그는 레스토랑의 개성은 식재료에서 나온다고 했다. "레스토랑은 그 위치를 반영합니다. 해당 국가와 지역 특징이 음식에 반영돼야 하는데 이것은 식재료를 통해 이뤄집니다. 음식은 60%가 재료, 35%가 테크닉, 5%가 요리사의 재능으로 이뤄집니다. 재료가 가장 중요하죠." 그는 내한 당시 서울 성북동 한국가구박물관에서 열린 만찬에서 그 말의 의미를 요리로 보여줬다. 고춧가루로 살짝 양념한 한우 타르타르(서양식 육회), 김치 양념을 섞은 크림 소스를 곁들인 채소 구이, 송로버섯을 얹은 한우 만두가 나왔다. 한국 식재료에 뒤카스다운 정교한 맛과 담음새가 결합돼 새로운 요리가 창조됐다.
뒤카스는 "20년 뒤 우리는 전혀 다르게 먹고 있을 것"이라며 "건강 친화적이고 지구 친화적인 요리가 외식업 진화의 핵심 주제"라고 말했다. 그는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더욱 지역과 향토 음식을 찾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국가와 지역의 정체성을 접시 위에 표현하고 그런 요리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려는 욕심이 요리사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습니다. 손님들도 그런 음식을 원하고요. 물론 서로 만나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곳으로써 레스토랑의 역할은 앞으로도 변함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