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4.09 13:45

지난달 21일 고 정주영 회장의 17주기를 맞아 장손격인 정몽구 현대차그룹회장의 자택에서 범현대가 일가가 모여 제사를 지낸다는 기사를 접했다. 연전에 경기도 하남시 창우리에 있는 고인의 묘소를 지인들과 함께 참배한 기억이 새삼스럽게 난다.

나는 약 30년의 세월을 현대와 함께하며 현대에서 실질적인 직장생활을 마무리 지은 만큼 고인의 기일을 맞이한 심정이 다른 사람과는 사뭇 달랐다. 고인은 나의 직장생활의 멘토이자 큰 스승님과 같은 분이다. 그의 어록을 너무 생생히 기억하고 이를 실천하면서 살아왔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다.

나는 현대를 사랑한다. 현대정신과 기업의 이념까지 그 모든 것을 속속들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도 현대정신 CPU를 내 나름대로 압축하여 정의를 내려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 C란 창의적인 사고(Creative Mind), P는 적극적인 사고(Positive Attitude), 그리고 U는 불굴의 도전정신(Unwearing  Challenge)이다.

조선일보DB

함께 직장생활을 했던 동시대 사람 대부분은 이런 현대정신이 뼛속 깊이 녹아 있는 사람일 것이다. 우리는 그런 자세로 불가능에 도전하고 성취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기에 그 정신을 잊을 수 없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이 고인과 함께 오늘의 세계적인 현대그룹을 일구어 온 것이다.

고인의 어록 중에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담담한 마음에 대한 것이었다. 간단히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담담한 마음을 가집시다. 담담한 마음은 당신을 바르고 굳세고 총명하게 만듭니다.” 여기서 담담한 마음에 대해서 나는 나름대로 이해를 하고 있다. ‘담담하다’는 말은 차분하고 평온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사전적인 설명으로는 그 뜻을 이해할 수가 없다.

지난 1981년 나는 밀린 공사비를 받으러 인도로 출장 간 적이 있었다. 국내에서 제작할 당시에도 받지 못한 공사비를 클레임이 걸린 상황에서 제품이 인도된 이후 수금을 하러 간다고 쉽게 지급할 고객들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현대정신으로 도전하여 수금에 성공했다. 지금 보면 적은 돈이지만, 과거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웠던 당시에는 큰돈이었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노심초사했겠는가?

이때 터득한 의미가 ‘담담한 마음’에 대한 것이었다. 담담한 마음은 모든 것을 백지상태로 돌려서 새로 차분하게 시작하는 자세이다. 사실 스트레스라는 것은 안 되는 것을 하려고 할 때, 즉 불가능에 도전하려 할 때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불가능도 담담한 마음으로 도전하면 풀릴 수 있다는 것이 이 말씀의 핵심이다. 모든 것을 백지상태로 돌려 차분하게 하나씩 풀어보면 세상의 어떤 문제도 풀 수 있다는 의미다. 나의 삶은 이 말씀과 더불어 새로 태어났다.

이후 나폴레옹과 같이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라는 말이 없어졌다. 계약서상 추가 보상이 안 된다고 명시된 조항을 뒤엎고 공사 시 추가 발생경비를 설계변경으로 보상을 받아 적자공사를 흑자로 전환하는 등 수없이 많은 소위 불가능하다는 난제들을 많이 해결한 경험이 있다.

며칠 전 퇴직 사우 모임인 ‘중우회’에서도 고 정주영 회장의 이야기가 화두로 나왔다. 과거 현대그룹 동경지사 사장을 지낸 화원 김진수 작가가 출판사로부터 요청을 받고 고 정주영 회장과 일본 경영의 귀재로 널리 알려진 마쓰시타 회장의 경영관을 비교 분석하는 저서인 ‘ 경영의 신’이라는 저서를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 정 회장은 이순신 장군을 가장 존경하였으며 외국인으로는 나폴레옹과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을 존경하였다고 한다. 고인은 이순신 장군과 같이 공은 부하 직원에게 돌리고 책임은 본인이 지는 경영자였으며, 진심으로 국가와 백성을 위하는 경영자였다.

현대자동차가 오늘날 자동차 업계에서 세계 5대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 이면에는 이순신 장군과 같이 옳지 않으면 ‘아니오’라고 과감하게 표현한 고인의 결단력이 숨어있다. 과거 현대차가 막 새로운 차종 포니를 생산하려고 할 때 일이다. 미국 대사가 고인을 만나 미국 자동차회사의 제조업체로 하청사업을 할 것을 종용했으나 미국의 요청을 과감하게 거절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오늘의 현대자동차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고인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유치함으로써 공산권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맺는 전기를 마련하였으며 국가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애국자였다. 그의 기업가 정신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하고, 금강산 관광을 개설하고, 개성공단을 열어 새로운 남북 화해의 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고인이 간 오늘날 시끄러운 정국을 보면서 그의 선견지명과 애국하는 기업가 정신이 한층 더 아쉬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소 떼 방북의 역사적 장면에서도 고인의 정신을 볼 수 있다. 당시 소 500마리를 싣고 북한에 보낼 때 사실은 500마리가 아니고 501마리였다. 그 이유는 500은 숫자의 끝이고 501은 새로운 시작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2018년 17주기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함께 가기 위한 남북 정상회담 및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은 작고하신 고 정 회장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꽁꽁 얼어붙었던 남과 북을 대화의 장으로 이끈 그의 철학과 같이 이달 말 열릴 남북 정상회담에서 남과 북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통일의 초석이 깔리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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