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4.10 01:28

한국계 윤 안, 디올 디자이너 입성… 美 백악관 패션 계보 잇는 로라 김
캐럴 림은 겐조 총괄 디자이너에… "한국은 패션 분출하는 분화구"

윤 안이 디자인한 남녀공용 반지.
윤 안이 디자인한 남녀공용 반지. /윤 안 인스타그램

"디자이너 윤 안, 프랑스 브랜드 디올 옴므(Dior Homme)의 주얼리 디자이너로 임명되다."

지난 5일(현지 시각) 해외 패션 전문 매체들 헤드라인이 일제히 이렇게 보도했다. 디올 남성 라인(옴므)의 총괄 디자이너인 킴 존스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윤 안의 출근 첫날'이라며 주얼리 총괄 디자이너의 얼굴과 이름을 대중에게 알린 뒤다. 디자이너 윤 안은 한국계 미국인. 한국계 디자이너가 유럽의 대형 패션 하우스 총괄 디자이너(creative director)로 입성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패션계에서 한국계 디자이너의 이름은 가끔 들렸다. '대통령 부인들의 디자이너'로 꼽히며 미국 뉴욕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오스카 드 라 렌타가 2014년 사망한 이후 그의 명성을 이어받아 브랜드를 이끄는 로라 김을 비롯해 지난 2002년 '오프닝 세리머니'라는 브랜드를 히트시킨 캐럴 림이 겐조의 총괄 디자이너가 된 일이 대표적이다. 이제 패션 본고장 파리까지 한국계 디자이너의 명성이 닿은 것이다.

미국 이민 2세로 자란 윤 안은 재일교포 3세이자 버벌(Verbal)이란 이름으로 음악을 했던 남편 류영기와 함께 패션 브랜드 '앰부시(Ambush)'를 내놓아 인기를 끌었다. 지드래곤, 퍼렐 윌리엄스, 닥터 드레 등 가수들과 협업한 데 이어, 패션 브랜드 사카이, 메종 키츠네, 루이비통 등과 함께 내놓는 대로 화제가 됐다. 체인이나 옷핀 스타일의 볼륨감 있는 주얼리 디자인과 화려하면서도 독특한 색감의 디자인이 특징이다. 2017년 프랑스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의 '젊은 디자이너상' 최종 3인에 올라 그녀의 프랑스 입성은 어느 정도 예견됐었다. 유명 패션 매체인 비즈니스 오브 패션(BOF) 등은 "과거 1990년대 일본계 디자이너들이 세계 패션계를 뒤흔든 데 이어 그 역할을 이제 한국이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근 프랑스 브랜드 ‘디올 옴므’의 주얼리 총괄 디자이너가 된 윤 안. 패션은 물론 그래픽 디자이너, DJ, 설치미술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이미 업계 스타로 이름을 알렸다.
최근 프랑스 브랜드 ‘디올 옴므’의 주얼리 총괄 디자이너가 된 윤 안. 패션은 물론 그래픽 디자이너, DJ, 설치미술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이미 업계 스타로 이름을 알렸다. /윤 안 인스타그램
특히 스타성에서 이전과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과거 한국계 디자이너들은 기술력이 뛰어난 데 비해 얌전하다는 평이 많았다. 하지만 윤 안 같은 요즘 디자이너들은 언론의 주목을 적극적으로 즐긴다. DJ이자 모델, 디자이너인 윤 안은 인스타그램 22만명이 넘는 팔로어를 보유하고 있다. 디올 출근 첫날 모습을 찍어 올린 인스타그램 사진에 '좋아요'가 1만 3500여개가 붙을 정도였다.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전통적인 패션 교육을 한 번도 받지 않았던 점도 오히려 신선하다는 평가다.

미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오스카 드 라 렌타’의 총괄디자이너 로라 김(오른쪽). 그녀가 디자인한 드레스를 입은 배우 겸 가수 설리나 고메즈.
미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오스카 드 라 렌타’의 총괄디자이너 로라 김(오른쪽). 그녀가 디자인한 드레스를 입은 배우 겸 가수 설리나 고메즈. /게티이미지코리아

동서양을 아우르는 융합적인 사고방식도 특징이다. 윤 안은 "동서양을 한 몸으로 겪으면서 서로 다름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고 말했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자란 뒤 뉴욕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로라 김 역시 오스카 드 라 렌타의 총괄 디자이너로 임명되면서 동양적인 우아함과 서양의 대범한 디자인을 효과적으로 융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할리우드 배우 에밀리 블런트, 설리나 고메즈 등 유명 스타들과 교류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로라 김은 얼마 전 미국 패션디자이너협회가 주는 최고의 디자이너상 최종 후보까지 오르기도 했다. 글로벌 패션 유통회사 네타포르테의 리사 에이컨 디렉터는 "한국계를 포함해 한국 디자이너들은 패션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마치 터져나오는 분화구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