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종이 나부랭이나 씹으면서 먹물을 머리에 뒤집어쓴" 샌님 학자 '나'가 떠돌이 노인 조르바를 만나며 그의 정신에 감응해가는 여정을 담는다. 본디 실존주의 소설로 알려져 있으나, 김욱동 교수는 "원효의 '일심(一心) 사상'에서도 영향받은 듯하다"고 분석한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도 "돌멩이들이 비탈을 굴러가면서 살아납디다!" 하고 외치는 조르바를 통해 암시하는 것이다. "세상만사 생각하기에 달려 있소."
◇번역 바꾸고 의미 살리고
1946년 세상에 나온 이 책은 1974년 '희랍인 조르바'란 제목으로 국내 초역됐다. 이후에도 프랑스·영어판을 거친 중역(重譯)이 대부분이었다. 김 교수는 "무분별한 중역으로 작품 세계가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 채 영화·뮤지컬 등으로 유통되며 오해가 가중됐다"고 진단했다. 먼저 조르바는 원래 조르바스(Zorbas)다. 소설을 처음 영어로 옮긴 칼 와이드먼의 착오로 '조르바'가 됐는데, 워낙 유명해진 탓에 오류를 알고도 고치지 못하는 이름이 됐다.
원전 번역을 시도한 유재원 교수는 그리스부터 조지아까지 카잔차키스의 행적을 모조리 쫓았다. "현지 문화를 포괄하는 주석을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겠다"고 했다. 조연에 머물러 있던 화자 '나'의 복원도 주목된다. 유 교수는 "'나'와 '조르바'를 1대1 대등한 관계로 격상시켰다"면서 "'나'가 조르바의 철학을 내면화하며 겪는 변화를 더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했다.
◇카잔차키스 친구들의 모임
1988년 '국제 카잔차키스 친구들의 모임'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결성됐고, 한국에도 모임이 생겨 올해 10주년을 맞는다. 9월 8일 서울 동숭동 예술가의집에서 번역본을 주제로 학술대회도 연다. 설립 추진위원장을 맡았던 유 교수는 "원문에 가까운 문장을 살피고 작가의 뜻을 공유하고자 한다"고 했다. 그의 뜻은 묘비명에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